창작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최종화는 무엇이 문제일까?

루모로마노 2022. 12. 26. 02:15
728x90
반응형

원작의 팬 분들이든, 아니면 드라마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하신 분들이든 관계없이,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최종화와 엔딩을 두고 이야기가 많이 오가고 있다.

일단 나는 16화까지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긴 했는데, 그렇지만 아무래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들이 있어 몇 마디 말을 끄적여볼까 한다.

드라마의 최종화와 엔딩에서 드러난 문제점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가장 먼저 드라마 작가들이 ‘말하고 싶었던 것’과 그것을 ‘싣는 이야기 구조’가 서로 완전히 어긋난다는 데서 원인을 찾고 싶다.

내 추측으로 드라마 작가들은 ‘진도준의 혈통빨’이 아니라 평범한 서민인 ‘윤현우의 힘’으로 이야기를 끝내고 싶었을 것 같은데, 뭐 그건 좋다.

문제는 40대 윤현우가 소년 진도준의 몸으로 빙의한 부분에서 이미 그 의도는 달성되었다는 데 있다.

뛰어난 능력을 지녔고 미친 듯이 노력하는 윤현우가 결국 재벌가의 음모에 휘말려 비참하게 죽은 것은 그에게 그저 혈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혈통’이라는 기회가 생기자마자 진도준=윤현우는 ‘혈통에만 의존하는 다른 재벌가 자손들’을 압도한다.

이 이야기 구조에서 드라마 작가들은 아무것도 느낀 게 없나?

재벌 2세, 3세들이 뛰어난 게 아니라, 기회만 주어진다면 평범한 서민이 훨씬 더 뛰어나다, 라는 이야기로 이미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달성되어버렸단 말이다.

그런데 그걸 마지막화에서 없던 일로 만든다?

그럼 이야기 주제는 이렇게 왜곡된다.

“응~ 너희 서민들이 아무리 날고뛰어봤자 재벌가의 책략은 못 이겨~”

게다가 드라마 작가들은 여기에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이상한 이야기 구조를 하나 더 덧붙이는데, 이렇게 되면

“응~ 윤현우 네가 뛰어난 게 아니라 원래 재벌 3세 진도준이 뛰어난 거야~”

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윤현우가 병원에서 의식을 잃었던 일주일, 그 일주일간의 진도준 체험. 그것을 ‘남가일몽’이라고 부르든 <구운몽>이라고 부르든 상관없겠지만,

남가일몽 고사나 <구운몽>의 주제를 생각하면 드라마의 주제는 더 이상해진다.

남가일몽, <구운몽>의 이야기는 결국

“백성들아~ 너희들 주제넘게 윗분들 거 넘보지 말고 주어진 대로 살다가 죽어라~ 그래야 복 받아~”

인데, 이건 드라마를 보는 대중 앞에서 “너희 아랫것들은 그냥 거기에 만족하고 살다 죽어~” 하고 조롱한 꼴밖에 되지 않잖은가.

재벌가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그 사회구조의 개혁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면 차라리 진도준으로 계속 살면서 순양그룹을 합리적으로 해체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서민 윤현우의 노력으로 거둔 승리’가 빛을 발하니까. 근데 이게 뭔가.

게다가 재벌가의 여러 부패한 모습을 비판하고 싶었다면 ‘윤현우는 죽었어야만 한다’. 그래야 재벌가가 얼마나 잔인하고, 욕망을 위해서는 사악한 범죄도 서슴지 않음이 드러나니까.

그런데 윤현우가 검사 한 사람과 국정원의 힘으로 살아났네? 재벌가가 고용한 용병은 총도 제대로 못 쏘는 아마추어들이네? 재벌가는 윤현우 한 사람도 처리를 못하네?

윤현우의 죽음이 이야기 전체에 주는 무게감. 그 무게감을 동력 삼아 재벌가를 개혁하는 진도준. 이 모든 이야기 구조와 주제가 ‘윤현우를 살려버리면서’ 무너져내렸다.

작가들은 윤현우와 진도준, 두 사람 ‘살인사건의 비밀’을 파헤친다는 이야기도 넣고 싶었던 모양인데, 윤현우가 안 죽어서 살인사건이 안 일어나버렸네? 그러니까 그냥 할머니 이필옥의 살인미수 사건 이야기를 그대로 복사해다가 15화, 16화에다 때려 넣으니 이야기가 안 삐걱댈 리가 있나.

뭐, 100보, 아니 1000보 양보해서 이럴 수는 있다.

그러니까 “재벌가의 현실 폭력을 해소하는 것은, 재벌가에 기생해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는 노예 근성으로는 불가능하다. 16화의 청문회에서 윤현우가 자신의 노예 근성을 극복하고 모든 불이익 앞에서도 결연히 맞섰듯이, 우리 사회가 그런 자세를 보여야 재벌가로 인한 사회 모순을 해소할 수 있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아니 근데 윤현우로 돌아와서도 미라클 인베스트먼트의 오세현이나 서민영 검사에게 철저하게 의존할 뿐이잖아? 진도준의 이십몇 년 인생에 무임승차해서 말이다. 게다가 진도준이 이룬 거, 그거 윤현우가 아니라 원래 진도준이 이뤘던 거잖은가. 윤현우는 그냥 그 꿈을 꿨을 뿐이고.

결국 이 이상한 드라마는 앞서 이야기했듯 “서민들아 너네 힘으로는 뭘 해도 안 돼.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안돼~” 라는 결론밖에 이야기하지 않는 꼴이다. 얼핏 보면 진보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결론은 그냥 극우 파시즘에 더 가깝다.

재벌가 자손들을 압도하는 서민의 승리, 그 쾌감을 안겨주던 드라마가 한순간에 서민들에게 패배의 굴욕을 잔뜩 먹여주었으니 욕을 안 먹고 넘어가긴 힘들 것이다.

드라마 작가들의 의도야 좋았겠지만, 원작에 대한 존중이고 훼손이고 다 떠나서 그냥 16부작의 엔딩을 낼 능력이 없었다고 할 수밖에.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