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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키예프 루스 공국은 10~12세기 당시 유럽의 대국으로 군림했고 훗날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기반을 형성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우크라이나는 동슬라브의 종가宗家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몽골의 침략 등으로 키예프는 쇠퇴하고 말았고, 소위 분가에 해당되는 모스크바가 대두하여 슬라브의 중심은 여기로 옮겨졌다. 루스(러시아)라는 이름까지 모스크바에 빼앗겼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나라를 나타내기 위해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심지어 역사상으로도 키예프 루스 공국은 우크라이나인의 나라가 아닌,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하는 러시아 발상의 나라로 받아들이게 됐다. 다시 말해, 모스크바에서 발흥한 나라가 훗날 대국이 되어 자국을 러시아로 명명하고, 키예프 루스를 잇는 정통 국가라고 자칭하며 나섰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나라 없는' 민족의 역사가 된 것이다.
구로카와 유지, 『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 글항아리, 2022, 6쪽~7쪽.
『아케비의 세일러복 2』 3쪽 ~ 185쪽, 총 183쪽
『중국군벌전쟁』 208쪽 ~ 227쪽, 총 20쪽
『위촉오 삼국사』 411쪽 ~ 438쪽, 총 28쪽
『성리자의』 8쪽 ~ 20쪽, 총 13쪽
『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 4쪽 ~ 48쪽, 총 45쪽
누계 45083쪽, 536화
그러나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키예프 루스 공국의 정통 계승자 여부에 따라, 자기 나라가 1000년 전부터 이어온 영광의 역사를 가진 나라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러시아의 한 지방에 불과했던 단순한 신흥국인지를 가늠하는 국격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가 된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의 논리는 이렇다. 모스크바를 비롯한 당시 키예프 루스 공국의 동북 지방은 민족도, 언어도 달랐고 16세기가 되어서야 핀어 대신에 슬라브어가 사용됐을 정도였다. 15세기의 모스크바는 키예프 루스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비非슬라브 부족의 연합체이지, 키예프 루스 공국의 후계자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가혹한 전제 중앙집권 체제인 러시아-소련의 체제와 키예프 루스 공국의 체제는 전혀 다르므로 별개의 국가다. 키예프 루스 공국의 정치-사회-문화는 몽골에 의한 키예프의 파괴(1240) 이후에도 1세기에 걸쳐 현재 서우크라이나 지역에 번성한 할리치나-볼린 공국으로 계승됐다.
구로카와 유지, 『유럽 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 글항아리, 2022,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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