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화~323화 초고를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309~311화는 최종고가 완성되었고, 312화~315화는 교정고가 도착해서 손보는 중입니다.
<개봉회담> 챕터가 생각보다 길어지네요. 처음에는 소년소녀들의 모험담이었던 이야기가, 점점 대하사극이 되다보니 이야기할 게 참 많습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올해 안에 완결까지 내고, 『삼국지 대황제 유선』을 내년 상반기 또는 하반기에 완결하고, 구상 중인 차차기작들을 내놓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만, 쉽지 않군요.
완결, 하니까 생각났는데, 요즘은 대체역사소설에서 완결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오늘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몇 마디 해볼까 해요.
빙의나 타임슬립물 같은 경우엔 원래 시간대로 돌아가 '자신이 바꾼 역사의 결과'를 보는 방식으로 에필로그를 마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키처럼 당장 접근하기 쉬운 매체를 통해 바꾼 역사의 개요나 자신이 빙의했던 인물의 평가를 살펴보기도 하고, 좀 더 점잖은 방식으로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기도 합니다.
또는 '후일담'을 아주 긴 연대기로 쓰는 방식도 있겠습니다. 제 작품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도 언젠가 쓰게 될 프리퀄(왕건이 발해 영토를 수복하면서 후삼국을 통일하는 이야기)의 긴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입장에서는 조금 민망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대체역사소설에서의 에필로그는 좀 변화가 필요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저는 어떤 신적 존재, 혹은 신비한 힘에 의해 타임슬립을 하거나 빙의하는 방식의 소설을 쓰길 꺼려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삼국지 대황제 유선』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썼었습니다. 지금은 제 글솜씨로 '트렌드' 대로 썼을 때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 수 있나 테스트하는 기분으로 쓰고 있죠.
왜냐하면 대체역사소설이란 '운명을 거스른 인간의 승리'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대세에, 현실의 벽에 막혀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역사가 '사람의 선택'에 의해 바뀌어가는 데에서, 독자는 감동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무력하지 않고, 이토록 많은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점을 깨달으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에필로그에서 갑자기 신이 등장해서 어땠냐고 물어보면, 김이 빠지기 마련이지요. 저는 그랬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에서 빙의나 타임슬립 등이 나오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인간이 '다른 선택'을 하는 것만으로도 역사는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 그런 걸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아마 지금 연재분까지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동시에 판타지 장르의 독자로서, '무신론적 판타지'라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고민을 오랫동안 해 왔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에 나오는 '어떤 설정'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해 제가 내놓은 하나의 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요컨대 '초자연적 현상'이 대체역사의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간이 어떻게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결국에는 '인간에게 가능한 역사의 여정'을 보여드리는 것이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대체역사소설이 제시할 수 있는 에필로그에는 어떤 것이 가능할까, 하는 고민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저 개인의 취향 문제입니다만, 저는 대체역사소설이 결국 '인간'의 강렬한 모습을 다루기 때문에, 에필로그에서도 결국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새로운 에필로그 유형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후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다든가, 나라들이 어떤 전쟁을 치렀고, 어떤 문화가 퍼졌고, 이런 것들은 '인간'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 집단, 인류, 혹은 인간이 만든 '국가' 같은 생산물로 초점이 옮겨갑니다. 이것들도 인간의 산물이긴 합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것들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인간'은 흐릿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비잔티움의 첩자』나 『당신들의 조국』, 혹은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결말을 모델로 제시해 볼까 합니다. 『비잔티움의 첩자』에서 주인공은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고 새로운 행복을 찾아내며, 『당신들의 조국』은 나치의 만행 폭로를 위해 주인공 자신이 숭고한 희생을 결심하며 끝이 납니다. 둘 다 대체역사 속을 치열하게 살아간 '인간'의 모습을 그리면서, 그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이후의 역사'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선을 확실히 긋죠.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더욱 분명하게 이 점을 드러냅니다. 새로운 십자군에 합류하길 바라는 사자심왕 리처드 앞에, 발리앙은 "저는 대장장이입니다"라고 답하죠. 이 작품은 대체역사물은 아닙니디만,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발리앙의 대답을 통해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확실히 여운을 남기고 끝나며, 이후의 역사와는 '선을 긋게' 되니까요.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다른 작가분들 뿐만 아니라 저도 노력해야겠지만, 대체역사소설을 쓰면서 혹은 웹소설을 쓰면서 일반적인 '역사소설', 혹은 '종이책 소설'을 읽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독서의 경험은 지금보다도 더욱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예를 들어 제가 기획 중인 서로마 대체역사물은 아무래도 같은 분야의 대체역사소설보다는 로버트 해리스의 『임페리움』, 『폼페이』,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 등에서 좀 더 많은 영향을 받을 것 같습니다. 아직 읽지 않은 『루스트룸』(『임페리움』의 후속작),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에서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딕타토르』(『임페리움』, 『루스트룸』과 함께 로마사 트릴로지)도 주문할 예정이고요)
어쨌든 '주인공의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이야말로, 외전을 제외한 본편의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뒤는 독자분들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거죠. 독자분들 중에는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건 자유로운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분들은 거기서 자신만의 후일담을 그려내기 위해 <팬픽>을 시작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저처럼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는 분들도 나오겠죠.
후일담을 길게 이야기하지 않는 결말은, 자신이 만든 그 세계에 대한 작가의 믿음이지요. 동시에, 새로운 작가가 자신만의 멋진 세계를 그려낼 것이라는 미래의 '희망'을 낳는 데 더 적절한 결말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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