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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록/독서기록

2021년 6월 1일 독서노트

by 루모로마노 2021.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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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변』 102쪽 ~ 124쪽, 총 23쪽

『유녀전기10』 210쪽 ~ 269쪽, 총 60쪽

누계 39655쪽, 357화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

하굣길에 우연히 마주친 소녀는, 암살 시도를 피해 도망친 국가원수 미리안이었다. 소년 주견하는 도와 달라며 내민 소녀의 손을 잡았지만, 음모에 휘말리며 부모를 잃고, 복수를 위해 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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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자주 대수롭지 않게 넘겨지기는 하지만, 이 선거는 러시아 인민의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사건으로, 또한 20세기 민주주의 역사의 이정표로 우뚝 설만하다. 최소한 4,400만 명의 러시아인이 투표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역사상 인민의 의지가 가장 크게 표명된 선거였다. 19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한 미국인보다 1917년 11월에 투표한 러시아인이 거의 세 배나 많았다. 1940년대까지 서방의 어떤 선거도 이 놀라운 선거를 능가하지 못했다. 투표율은 60퍼센트에 약간 못 미쳤다. 참여율은 도시보다 ‘후진적인’ 시골에서 다소 높았다. 부정선거의 증거는 거의 없었다. 러시아 유권자의 투표는 러시아 사회의 기본 구조와 1917년 2월 이후 전개된 정치적 사건들의 추이를 명확하게 반영했다. 오랫동안 잊힌 이 사건을 연구한 선도적인 역사가는 이렇게 평했다. “그 선거에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없다고… 우리는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도시민이 재산권을 위해 투표했을 때, 병사와 그 아내가 평화와 동원 해제를 위해 투표했을 때, 농민이 토지를 위해 투표했을 때, 그 놀라운 선게에 비정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면이 있는가?” 이들에게 민주주의 경험이 부족했을지는 몰라도, 혁명 러시아의 ‘유권자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애덤 투즈(2020), 『대격변』, 아카넷, 121쪽.

 

*종종 ‘인권’이나 ‘민주주의’가 역사를 다룬 매체에서 나올 때마다 게거품을 무는 사람을 보곤 한다. 인권이나 민주주의는 근대의 산물이며, 고대나 중세를 다룬 작품에서는 나올 수조차 없다고.

그러나 나는 이런 관점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정말로 ‘고증’을 위해 나와선 안 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인권과 민주주의가 싫어서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인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듣자면, 고대나 중세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생각을,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혹은 신의 계시를 받아 발명한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았을 뿐, 고대인도 중세인도 이미 인권과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있었다. 대황제 키루스의 사례든 중세 고려의 「차마설」이든 증거를 들자면 얼마든지 들 수 있다. 그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체계화된 끝에 근현대의 인권과 민주주의로 자리 잡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선배들 앞에서 그동안 지나치게 교만을 떨어 온 게 아닐지.

문명은 인위의 산물이며, 야만이야말로 ‘자연상태에 놓인’ 인간의 본성이라는 주장 역시 그러하다. 일단 나는 문명=인위, 야만=자연이라는 도식 자체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고 동물의 한 종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문명을 건설하는 인간의 행위를 어떻게 ‘자연스러움’에서 분리할 수 있는가?

오히려 문명 건설이야말로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야만적 행위들이야말로 ‘인위’의 산물이 아닌가? 인간의 야만적 ‘본능’의 증거라며 가져온 ‘전쟁의 흔적’들은 야만이야말로 ‘자연에서 먼’ 산물이 아닌가 생각하게끔 한다. 전쟁이야말로 극도로 ‘인위적’ 행동이 아닌지?

극단적 환경에 놓여 있는 인간의 일탈적 행위를 두고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십 년 전 MBC에서 진행한 ‘게임의 폭력성을 알아보기 위해 PC방 전원을...’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쇼와 비슷하지 않은가?

또한 정말로 인간의 본능이 파괴적 야만에 있다면, 인간 문명의 번성 자체가 설명이 되질 않는다. 단순히 +, -로 따져보아도 문명을 건설하고자 하는 노력이 늘 +였기에 우리는 멸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문명을 건설해 올 수 있었다. 현대전의 야만성에 대해 과장된 비관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전쟁의 절대적인 숫자가 인류 역사 내내 감소하는 그래프를 그려오고 있음을 애써 외면한다.

소위 ‘성악설’이라는 것 역시 그러하다. 나는 이것이 진정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인가, 아니면 ‘인류가 그런 존재이길 바라는 자들의 바람’을 반영한 것에 불과한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상앙으로부터 마키아벨리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인간이 (제발) 법으로밖에 통제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받아들여져서, (제발) 내가 섬기는 군주의 권력 강화에 도움이 되고, (제발) 그 기회를 틈타 내가 출세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끊임없이 성악설을 ‘발명’해 온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법가는 끝내 법치주의로 우화하지 못하였으며, 마키아벨리즘은 처세술의 일종이 되고 말았다.

위에 인용한 사례 역시 그러하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민주주의는 러시아 인민들에게는 이른 것’이었다는 발상은, 순전히 민주주의를 없애고 싶어했던 볼셰비키의 창작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인권’이나 ‘민주주의’와 거리를 두면서 ‘쿨해’보이거나, ‘멋있어’보이거나, ‘학문적으로 엄격’해 보이는 착각을 일으키는 모든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 실상은 그냥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귀찮은 것들을 없애버리고 싶은 사람, 이를테면 레닌 같은 인간의 순전히 권력에 대한 탐욕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고.

또한 역사(이 안에는 대체역사도 포함된다) 컨텐츠를 창작하려는 창작자도 늘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엄격한 사고로 창작의 기둥을 세우는 사람인지, ‘허세의 발명품’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허풍선이인지를…….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

하굣길에 우연히 마주친 소녀는, 암살 시도를 피해 도망친 국가원수 미리안이었다. 소년 주견하는 도와 달라며 내민 소녀의 손을 잡았지만, 음모에 휘말리며 부모를 잃고, 복수를 위해 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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