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노벨 『마스터 오브 이터니티』는, 내가 즐겨하는 동명의 모바일 게임과 세계관 및 등장인물, 일정 부분 스토리를 공유하는 작품으로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원 소스 멀티 유즈란 하나의 세계, 그 세계의 설정을 공유하는 작품군을 여러 매체를 통해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모바일 게임 <마스터 오브 이터니티>는 네이버 공식 카페에서는 외전에 해당하는 웹툰을 즐길 수 있고, 이렇게 소설로도 게임 밖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원 소스 멀티 유즈는 판매자, 혹은 창작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서로가 서로의 홍보와 매출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이 있다. 한편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한 세계관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고, 또 그 세계관의 비밀을 직소 퍼즐 맞추듯이 파헤쳐나간다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특히 이 두 번째 특징이 중요한데, 개별 매체 및 작품에서 드러나는 세계의 ‘조각’들은 일종의 ‘단서’로서, 소비자가 ‘전체 세계의 모습’을 ‘추리’하게끔 한다. 소비자는 이러한 ‘추리’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거대한 세계의 전체상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을 때, 성취감과 지적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원 소스 멀티 유즈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개별 매체 및 작품 간 설정 오류, 혹은 설정 충돌의 최소화라고 볼 수 있다. 한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려면,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여러 ‘창구’가 분명 공통된 하나의 세계를 향하고 있다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원 소스 멀티 유즈가 주는 재미는 반감된다. 재미의 반감은 소비자가 자신의 돈을 여기서 쏟아 부을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스터 오브 이터니티』는 이런 면에서 아직도 한국의 서브컬처 업계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1권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보면, 작품의 저작권에 대한 문구 아래 자그맣게 쓰여있는 글씨를 발견할 수 있다.
‘라이트노벨 <M.O.E.>는 게임 <M.O.E.>의 공식 시나리오 내용과 다릅니다.’
나는 이 문구를 넣은 사람과 만난다면, 게임 <마스터 오브 이터니티>의 팬이 자신의 돈을 들여 라이트노벨 작품을 사야 할 이유를 말해보라고 묻고 싶다. 아무리 소비의 시대라고 하지만 이유 없는 소비란 없다. 소비의 시대는 소비를 할 만한 어떤 가치를, 설령 그것이 극도로 추상적이어서 허영에 가깝다 할지라도, 분명 그럴만한 가치를 극대화시켰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게임에 나오는 귀여운 소녀들을 표지에 넣으면 팔리리라 생각한 것인가? 그렇다면 이는 지나친 안일함이다. 아니면 게임의 팬들이 같은 설정을 공유하는 작품이라 착각해서 구입하게 만든 후, 설정 충돌이나 오류가 나타나면 저 조그마한 문구로 변명을 하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는 팬에 대한 기만이다.
라이트노벨 『마스터 오브 이터니티』 1권은 그 자체로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깔끔하며, 등장인물들의 성격도 발랄하고 귀엽다. 일러스트도 물론 훌륭하다. 하지만 이 작품이 지닌 가치의 상당 부분은, 이 작품의 내용이 게임의 이면을 다루고 있다는 데에서 온다.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깔끔하며, 등장인물들이 발랄하고 귀여우며, 일러스트가 훌륭한 작품은 이 『마스터 오브 이터니티』 외에도 서점에 넘치기 때문이다.
블리자드사의 게임 세계관을 반영한 소설들이, 처음에는 설정 오류로 인해 얼마나 많은 비판을 받았던가. 블리자드사가 이를 반성하고 작품의 감수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나는 한 사람의 팬으로서 서브컬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 모습을 꼭 본받기를 바란다. 검토, 감수, 회의, 조율에 들어가는 노력은 자본 이전에 성의의 문제다. 성의는 곧 팬들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기도 하다.
재미있게 작품을 읽고 나서 ‘라이트노벨 <M.O.E.>는 게임 <M.O.E.>의 공식 시나리오 내용과 다릅니다.’라는 한 마디에, 나는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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