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영류왕2

고구려와 당의 종교 문제에 대한 상상 https://gall.dcinside.com/m/alternative_history/493746 gall.dcinside.com 위 링크의 글을 보고 든 짧은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이라 훗날 쓰게 될 대체역사소설에 적용하는 것 외의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 윗글을 보고 펼쳐본 상상은 이러하다. 만약 일본 고대, 중세의 많은 관습이 한반도의 삼국과 닮았고, 이 중 천황의 지위와 대우에 대한 것도 삼국, 특히 고구려를 닮았다면 어땠을까. ​ 윗글의 일본 천황처럼 고구려의 태왕은 이른바 ‘천손’이라 하여 신의 자손으로 간주된다. 광개토왕과 장수왕 시대를 지나면서, 특히 장수왕 시대에 평양천도를 비롯한 극심한 갈등을 겪으면서 고구려의 ‘태왕 신격화’ 역시 그 정도가 깊어졌던 것 아닐까.. 2021. 4. 22.
연개소문, 고구려의 마지막 희망을 짓밟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개소문의 반란은 중앙집권화 개혁을 꾀하던 영류왕과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비극이라는 것이다. ​ 이는 고구려의 마지막 방어 역량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려던 고구려의 미래를 가로막은, 철저히 사욕에서 비롯된 반란이었다. ​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의 대규모 회전인 주필산 전투를 살펴보자. 이때(645년) 고구려는 자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20만 대군을 동원하는 역량을 보여준다. 이 동원 역량은 집권한 지 고작 2년을 조금 넘긴 연개소문의 공로는 아닐 것이다. ​ 그보다는 영류왕 고건무가 평화를 지키며 618년부터 642년, 즉 25년에 걸쳐 국가를 개혁하고 내실을 다져가며 쌓아 올린 동원 역량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동원 능력은 내정을 안정시키면서 인구를 증대하는 한편으로, 중.. 2020. 10. 29.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