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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2

형주자사 유기의 증발 서(序) - 무릉은 누구에게​적벽대전을 전후하여, 손권은 정보를 강하 태수에, 주유를 남군 태수에 배치합니다.​「선주전」, 「여몽전」, 「요립전」과 종합해서 파악해보면 임강(훗날의 의도군) 태수에는 장비, 계양 태수에는 조운이 배치되었으며, 영릉 태수에는 학보, 장사 태수에는 요립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문제는 무릉 태수입니다.​위에서 살펴 본 각 군 태수는 그 군의 점령 주체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런데 무릉군은 아닙니다.​무릉군의 치소인 임원현에서 태수 김선의 항복(혹은 함락시키고 처형)을 받아낸 주체는 유비군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황개가 무릉만을 치면서 '태수'로 임명되었다는 기록도 있는데(「황개전」), 이상의 기록을 이어보면 점령은 유비가 하되 무릉 태수의 자리는 황개에게 .. 2024. 9. 13.
손권은 관우의 죽음 전까지 정말 손해만 보았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No. 위 지도는 적벽대전 직전과 직후의 상황이 섞여 있는데 하나씩 설명해보자면, ​ 유기, 손권령 강하, 서릉군, 기춘군으로 표시된 땅이 전부 원래 강하군이다. 물론 기춘군 일부는 양주 여강군 일부를 뗴어다 만들었지만, 대부분은 원래 형주 강하군 땅이었다고 보면 된다. ​ 요컨대 강하군은 그 자체로도 상당히 큰 영역이다. ​ 208년, 적벽대전 직전에 손권은 황조를 죽이고 하구 일대를 차지하는데, 이때 지도에 표시된 '손권령 강하'와 '서릉군', '기춘군'으로 표기된 영역을 차지한다. ​ (조조가 이때 기춘군을 장악했다는 설도 있지만, 강하 북부가 적벽대전 이후에나 조조의 수중에 들어가기 때문에, 조조가 적지 한복판에 있는 데다 여남군과는 산맥으로 가로막힌 기춘군을 차지했을 것 같진 .. 2023.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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