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질문이 하나 올라와서 이렇게 글을 몇 자 적어봅니다. 오늘은 연재 요령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할 것 같네요.
질문
안녕하세요 작가님. 여유가 되신다면 시간 괜찮으실 때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웹소설 작가가 되고싶어 현재 카카오스테이지나 문피아같은 연재처에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다만 고민인게
저 또한 회귀, 빙의, 천재등등… 최근 트랜드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 재밌다고도 생각하지만 작가님처럼 00년대 느낌의 소설이 조금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시절, 아직은 라노벨의 영향을 많이 받은 느낌의 소설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자극적이지 못한 제목이나 주제 때문인지, 제가 필력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주목을 끌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이러한 난관을 작가님 같은 경우 동시 연재로 해결하셨다고 읽었는데, 초보 작가 지망생 입장에서 크게 늘지 않는 조회수와 댓글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맞나. 라는 회의감에 빠지게 하더라구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몇 회분의 연재를 진행하셨을 때 출판 제의를 받으셨고 그때 당시 조회수나 댓글 같은 것은 어느 정도였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런거에 연연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가야겠다,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다고 다짐하며 책상앞에 앉아 글을 이어나가지만, 막상 작업을 끝내고 글을 업로드하고 나면 부정적인 생각이 들 수밖에 없더라구요…
뒤를 따라가고 싶어 하는 후배에게 현실적인 조언이어도 좋고, 자그마한 용기라도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웹소설 작가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말 참 많이 듣습니다.
‘지표 분석’, ‘연독률’, ‘반응’, ‘조회수’, ‘선작(관작)’…… 같은 것들 말이죠.
조회수가 얼마나 나오고, 1화의 조회수가 최신 연재 회차까지 얼마나 이어지고, 그런 것들을 분석하는 건 중요하긴 합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의 일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5회까지 연재해보고 지표 안 좋으면 끝내고 다른 작품 올려라.”
저는 그런 말을 한 분께 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진심으로, 그냥 다른 작품을 새로 시작하는 게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입니다.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2000년대 초에 장르소설계에서 인기를 꽤 끌던 작가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2010년대 후반 어느 날 한 플랫폼에서 웹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이런 걸 반응 연재라고 하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은 프로 작가이기 때문에 인기가 없는 작품을 계속 끌어안고 있을 수 없다, 접겠다는 공지를 올리셨습니다.
“지표가 안 나오면 접어야지. 나는 프로 작가라 인기 없는 작품을 계속 쓸 수는 없으니까”
저는 바로 이 생각에, 그 작품이 인기가 없었던 이유가 다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화까지 연재했다가 반응 안 좋으면 무턱대고 접고 다른 작품 연재를 시작하면서, 새로 연재하기 시작한 작품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건, 미신에 불과합니다.
살짝 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문피아 연재 기준으로요.
2018년 10월 무렵 연재 회차는 대략 35회, 조회수는 3500이 넘을락 말락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한 회차 당 평균 조회수 100회, 굉장히 처참한 성적이었죠.(실제 조회수는 첫화에서 더 많고, 최신화로 갈수록 줄어드니까요)
이때 저도 지표가 참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다른 지망생분들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접고 다른 작품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지표를 바탕으로 이 작품을 고쳐보기로 했죠.
1화부터 최신 연재분까지야 당연히 한 번 다듬어야 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몇몇 회차를 골라내는 작업을 한 번 더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1화는 조회수 200회, 2화는 조회수 190회, 3화는 조회수 180회…… 이런 식으로 안정적으로 가다가 4화에서 90회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해야 할 일은 “연독률 망했네, 접고 다시 시작하자”가 아닙니다.
3화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데이터를 얻은 거죠.
그럼 뭘 해야겠습니까?
3화를 고쳐야죠.
그런데 고친 효과는 가만히 있는다고 반영되는 게 아니니까, 그때 비로소 비축해 두었던 ‘최신화’를 올려서 플랫폼의 무료 작품 최신 연재작 목록에 뜨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3~4화 간 조회수 격차가 얼마나 해소되는지, 4화 이후로도 독자들이 계속 읽어나가는지 지켜보는 거죠.
1화는 많이 보는데 2화는 안 본다?
1화가 강렬하지 않아서 독자들이 뒤로 가기를 누른 거겠죠?
질문해주신 분의 경우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라이트노블 웹소설’을 쓰겠다면서 감평을 부탁했던 어떤 분을 예로 들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그분뿐만 아니라 일본 서브컬쳐의 영향을 받아서 작품을 쓰겠다는 많은 분이 비슷한 실수를 하세요.
도입부가 츤데레 브라콤 여동생이 주인공인 오빠더러 일어나서 아침 먹으라는 장면입니다.
아니면 무슨 그 세계관 천지창조 이야기하고 있어요.
저는 어땠을까요? 처음 조아라에 연재할 때 1화에 대체역사 설정집을 때려 박았어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죠.
이걸 어떻게 개선했을까요?
혹시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제 작품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의 도입부 두 문장은 이겁니다.
-최고 권력자의 장례식이 끝났다.
-순국선열 묘역의 가장 깊은 곳, 항전열사릉 앞에 검은 우산들이 모였다.
강렬함이 다르지 않나요? 시작하자마자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이 작품을 읽어야할 이유를 독자들 앞에 제시하는 문장들입니다.
당연히 1화에서 대체역사 설정집을 치워버리고, 저 구절로 시작하니까 조회수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2019년 1월 10일, 제 작품은 처음으로 네이버에서 베스트리그에 진출하고, 2월에는 드디어 출간 계약을 맺습니다.
35회에서 15화 정도 더 써서 50회를 연재할 무렵의 일입니다.
만약 제가 “왜 지표가 좋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작품을 분석하고 고쳐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지금도 1화에 “내가 생각한 멋있는 세계관 설정”이나 때려 박으면서 자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나 원망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진지하게 프로로 데뷔하고 싶다면, 성적이 나오지 않는 자기 작품을 해부하듯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했는지, 또 무엇을 실수했는지 확실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하죠.
다른 작품을 시작하는 건 그 이후의 일입니다.
다시 앞서 언급한 그 작가분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냉정하게 말씀드려서, 그렇게 연재 중단된 작품, 제가 2007년인가 2008년 무렵에 그분의 다른 작품에서 느꼈던 재미가 그대로 들어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단점도 그대로 들어있던 작품이었습니다.
즉, 2007년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분은 발전하지 않았던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분석 없이, 성적 안 나온 작품 끝내고 그냥 새 작품 진행하면 더 나은 걸 쓰리라고 기대했으니까요.
학원강사를 할 때 이런 학생들을 참 많이 봤습니다.
시험을(중간, 기말이든, 모의고사든) 보고 나면, 시험지를 그냥 자기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는 다시는 보지 않는 겁니다. 아예 쓰레기통에 버리는 학생도 있었죠. 그러면서 다음 시험 성적이 잘 나오길 기대합니다.
저는 그런 학생들에게 꼭 다시 시험지를 보라고 권하곤 했습니다.
오답 속에는 내가 했던 실수들, 공부 방법에서의 부족한 점이 모두 들어있고, 이것을 분석하는 것이 다음 시험에서의 성적 향상으로 반드시 이어지니까요.
웹소설 연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이상할 정도로 시험지를 다시 살펴보는 걸 부담스러워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생은 시험지를 다시 보곤 ‘나는 머리가 나쁜가 봐’라며 자기 비하에 빠지기도 하지요.
작품을 분석하면서, 자신을 비난해선 안 됩니다.
자신의 작품을 또 하나의 ‘교재’처럼 생각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저 같은 경우엔 일주일쯤 지난 제 원고를 ‘첨삭해줘야 할 학생 원고’ 정도로 대합니다. 아마 이건 제가 논술학원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어서 더 익숙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저는 그 작업에도 즐겁게 임합니다.
결과적으로 좀 더 좋은 모습이 되는 건 제 작품이니까요.
각 회차의 조회수뿐만 아니라, 제목과 소개글도 한 번 분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건 다른 성적이 좋은 작품과 비교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지금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 중인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는 소개글이 너무 깁니다.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고 있죠.
무료 연재만 놓고 보면 『삼국지 대황제 유선』의 성적이 훨씬 좋은데, 이 작품의 소개글은 이렇습니다.
-유선, 서기 211년 다섯 살로 회귀하다.
정말 간결합니다. 작품 정보가 확실히 축약되어 있죠.
사실 이런 식으로 소개글 쓰는 방식을 바꾼 건 『전지적 독자 시점』이나 『소설 속 엑스트라』의 영향이 큽니다.
-내가 쓴 소설의 엑스트라가 되었다.(『소설 속 엑스트라』)
-오직 나만이, 이 세계의 결말을 알고 있다.(『전지적 독자 시점』)
개인적으로 최고의 소개글을 꼽자면 바로 이겁니다.
-어린 순례자야, 검을 집어라.(『메이지 슬레이어』)
말이 필요 없죠.
제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최근 웹소설의 제목이 유치해졌다, 문학적인 멋이 없다고들 말합니다만, 저는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겉멋에 찌들었다’고 봅니다.
최근 웹소설의 이른바 ‘문장형 제목’, 혹은 ‘유치해 보이는 제목’은 작품의 핵심을 꿰뚫는 ‘담백한’ 제목입니다. 간결하고 깔끔합니다. 군더더기가 없고 겉멋이 없고 허세가 없습니다.
왜 이 점을 지적하냐면, 이른바 ‘문학 하다가 오신 분들’이 웹소설 흉내를 낸다면서 제목에서 허세를 빼지 못하는 걸 자주 봐 왔기 때문입니다. 이러면 제목이 그냥 문장형으로 변하기만 해서 난잡해질 뿐입니다.
여기까지, 독자들의 유입과 연독률을 늘리는 방법에 대한 저의 생각을 늘어놓아 봤습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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