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게임 <토탈워 : 삼국>을 즐기는 한편으로, 동생이 준 생일선물(교보문고 기프트카드)로 『서진 흥망사 강의』도 사서 함께 읽었습니다.
저한테는 삼국지로 친숙한 사마의, 사마사, 사마소 부자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그보다도 저는 '팔왕의 난' 이야기가 무척 끌리더군요.
게임 <토탈워 : 삼국>의 첫 번째 DLC가 바로 '팔왕'인데, 이걸 두고 어떤 분이 '서양인에겐 팔왕의 난이 왕좌의 게임처럼 받아들여진 것'이라 평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서진 흥망사 강의』를 읽으면서, 그 비유가 정말 딱 들어맞는다고 느꼈습니다. 적과 동맹이 계속 바뀌고, 배신과 모략이 소용돌이 칩니다.
심지어 정말로 <왕좌의 게임>의 한 장면처럼 인간의 잔혹함이 춤을 추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장사왕 사마애는 산 채로 불태워져 죽는다든가...
책을 읽으면서 이해를 쉽게 하려고, '팔왕의 난'에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추려서 계보도를 작성해보았습니다. 혜제 사마충을 중심으로 촌수와 호칭을 따져보니... 와 정말...
사마의의 요동 주민 대학살이나 사마소의 황제 조모 시해 사건을 보면서 '사마씨놈들 잔인성은 유전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솔직히 이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걸 보면 가풍 자체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지경입니다.
이 계보도를 토대로, 혜제 즉위부터 동진 건국까지 팔왕의 난~영가의 난을 정리해 보면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서로 죽일 때 어떤 관계였는지도 덧붙여 보았습니다.
1. 가남풍이 사마휼(태자, 의붓아들), 사마량(여남왕, 시종조부), 사마위(초왕, 시숙) 살해
2. 사마융(양왕), 사마륜(조왕) 형제가 가남풍(종손부) 살해
3. 사마륜(조왕)이 종손자 사마충(혜제)의 황위 찬탈, 사마휼(태자)의 아들 사마장(태손, 사마륜의 종현손) 살해
4. 사마륜(조왕)이 종손자 사마윤(회남왕) 살해, 사마윤의 아들(이자 사마륜의 종증손) 사마적도 살해
5. 사마영(성도왕), 사마애(장사왕) 형제, 재종형제인 사마경(제왕), 재종숙부 사마옹(하간왕)과 연합해 사마륜(조왕) 살해.
사마륜은 사마영, 사마애, 사마경에게는 종조부, 사마옹에게는 종숙부
6. 사마경(제왕), 같은 아버지 사마유(攸)의 아들이자, 자신의 동생 사마유(蕤, 동래왕) 살해.
7. 사마옹(하간왕), 사마영(성도왕), 사마예(장사왕)이 연합해 제왕 사마경 살해.
사마경은 사마옹에게는 재종질, 사마영과 사마예에게는 재종형제
8. 사마옹(하간왕), 사마월(동해왕), 사마영(성도왕)이 연합해 사마애(장사왕) 살해.
사마애는 사마옹, 사마월에게는 재종질, 사마영에게는 동생
9. 사마영(성도왕), 사마옹, 사마월과 싸우던 중에 폐출되어 살해당함.
사마영은 다른 두 사람의 재종질
이 과정에 사마효(司馬虓, 범양왕)도 개입. 사마효는 사마규의 손자, 사마수의 아들로 사마월의 종형제
10. 사마옹(하간왕), 사마월(동해왕)과의 싸움에서 패해 살해당함. 두 사람은 재종형제 사이
이 과정에 사마무(경릉왕)도 개입. 사마무는 사마랑의 손자, 사마망의 아들
팔왕의 난 종결
11. 사마충(혜제) 사망. 사마월(동해왕), 사마치(예장왕)를 옹립. 사마치는 혜제의 동생, 사마월의 재종질
12. 사마월, 사마치가 구희(정동대장군, 개부의동삼사, 도독청주제군사)에게 자신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린 걸 알고 분사.
13. 영가의 난, 낙양 함락. 사마치(예장왕-회제), 유연의 아들 유총에게 살해당함. 유연은 한때 사마영의 부하였음
14. 사마업(민제) 장안에서 즉위. 사마업은 사마치의 조카.
15. 장안 함락. 사마업 역시 유총에게 살해당함.
16. 사마예(낭야왕-원제), 건업에서 황제 즉위.
사마예는 혜제(사마충)와 회제(사마치)의 재종형제, 민제(사마업)의 재종숙부
동진 시대 시작
말이 팔왕의 난이지 사건의 발단이 된 왕, 직접 관여한 왕까지 합치면 11명의 왕이, 간접적으로 관여한 왕까지 합치면 14명 정도 됩니다. 아마 제가 미처 조사하지 못한 왕들도 계산하면 더 많지 않을까 싶어요ㅎㅎ
그러니까 사마랑, 사마의, 사마부 그리고 삼국지 시리즈에는 잘 안 나오는 사마규에 이르기까지, 이 형제들의 손자, 증손자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개막장 시대라, 그 말입니다.
사마소가 형 사마사의 양자로 보낸 사마유,
사마소의 뒤를 이은 사마염.
두 형제의 미묘한 갈등도 결국 아들 대에 폭발해서 사촌(법적으로는 6촌)끼리 죽고 죽이는 사태가 벌어지지요.
이렇게 재미있게 읽은 '팔왕의 난'. 언젠가 토탈워 팔왕 캠페인 할 때 굉장히 몰입하면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마씨 개막장을 이겨내고 조환이 위나라를 부활시키는 이야기라든가... 그런 것도 해보고 싶어요.
또 한편으로는 대체역사물 소재로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ㅎㅎ
음, 『서진 흥망사 강의』는 이처럼 재미있는 책이고, 또 굉장히 쉽게 쓰인 책인 데다 한국에는 잘 소개되지 않은 '서진'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팔왕의 난이나 영가의 난 외에도 서진 사회의 사치하는 풍조, 그런 풍조를 비판했던 지식인들, 혹은 그에 편승한 지식인들의 모습도 잘 그려냈지요.
다만 각 챕터나 책의 말미에서, 저자의 결론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역사를 현실 정치를 비판하는 데 무분별하게 동원하는 것도 좋진 않지만, 이 책은 왠지 '현실 정치'의 눈치를 너무 보느라 '역사적 판단'에 있어서 멈칫 멈칫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더 깊이있는 비판, 그러니까 사람 개개인의 됨됨이를 넘어서는 시스템적(체제적) 한계 같은 것을 비판해야 할 때, 거기서 체제를 비판하지 못하고 개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번역 면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옥새'를 자꾸만 '옥쇄'라고 한다든가(...)
저자가 진행한 TV강의를 다시 책으로 다시 엮은 것이라, 대중에게 친숙한 '연의'의 일화를 차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저자가 이미 작고해 번역하다 의문이 나는 부분이 있어도 물어볼 수 없다는 번역자분의 말을 들으면서 참 아쉬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양왕 사마융이 사마'동'으로 번역된 부분에 의문이 있었거든요.
사마융이 사마동으로 나오는 것 역시 소설 『후삼국지』에서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자는 연의뿐만 아니라 『후삼국지』같은 소설도 차용한 것인지, 이 작품을 차용했다면 한국과는 달리 중국에서 『후삼국지』의 인기가 꽤 높은 것인지, 혹은 요즘 나오는 비판처럼 중국의 역사학이 '연의'와 구분되지 않는 수준의 담론에 지배당했기 때문인지...
해결할 길 없는 의문을 품고 독후감을 마칩니다. 앞으로 다른 위진남북조시대 역사서를 읽으면서 공부를 보충해 나갈 수밖에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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