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손권5

형주자사 유기의 증발 서(序) - 무릉은 누구에게​적벽대전을 전후하여, 손권은 정보를 강하 태수에, 주유를 남군 태수에 배치합니다.​「선주전」, 「여몽전」, 「요립전」과 종합해서 파악해보면 임강(훗날의 의도군) 태수에는 장비, 계양 태수에는 조운이 배치되었으며, 영릉 태수에는 학보, 장사 태수에는 요립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문제는 무릉 태수입니다.​위에서 살펴 본 각 군 태수는 그 군의 점령 주체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런데 무릉군은 아닙니다.​무릉군의 치소인 임원현에서 태수 김선의 항복(혹은 함락시키고 처형)을 받아낸 주체는 유비군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황개가 무릉만을 치면서 '태수'로 임명되었다는 기록도 있는데(「황개전」), 이상의 기록을 이어보면 점령은 유비가 하되 무릉 태수의 자리는 황개에게 .. 2024. 9. 13.
유선 납치 미수 사건 - 유비와 손권의 '왕좌의 게임' 유비는 손권에게 무엇을, 어떻게 속였는가 - 유비의 새 모델 '교활한 북로'프롤로그.​214년 5월, 유비가 유장의 항복을 받아내고 익주를 점령하자, 손권은 분개하여 외칩니다.​"활로(猾虜)가 감히 나를 속이다니!"(「노숙전」)​유비의 출신이나 군사집단의 성격을 생lumoromano.tistory.com앞서 「여대전」과 「오범전」을 통해 알아 본 손권의 분노 포인트 두 가지를 종합해보면​손권이 여동생 손부인에게 돌아오라고 한 시기, 손부인이 유선의 납치를 시도한 시기를 좀 더 정확하게 추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연의』는 정말 뜬금없이 손권이 어머니의 병을 핑계로 (좀 기묘한 취미가 있을 뿐 착한) 손부인을 속여 데려오지만, 손권이 결혼 동맹의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어찌 보면 극단적이라고 할.. 2024. 9. 13.
유비는 손권에게 무엇을, 어떻게 속였는가 - 유비의 새 모델 '교활한 북로' 프롤로그.​214년 5월, 유비가 유장의 항복을 받아내고 익주를 점령하자, 손권은 분개하여 외칩니다.​"활로(猾虜)가 감히 나를 속이다니!"(「노숙전」)​유비의 출신이나 군사집단의 성격을 생각해보면(또 유주 사투리의 억양이 강하다고 상상해본다면) 저는 활로(猾虜)가 '교활한 포로'라기보다는 '교활한 북로(北虜) 새끼!"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많은 분들이 손권의 이 말을, 이전에(주유가 살아있던 시점이니 210년 이전에) 유비에게 익주 공략을 제안하자​"익주 침공을 고집하면 나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입산할 겁니다!"​라고 반협박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유비가 손권을 속이지 않았다는 게 아닙니다.​유비는 분명히 손권을 속였거나, 속였다고 오해.. 2024. 8. 11.
'반촉(反蜀) 유사역사학'과 익양대치 프롤로그​하나의 유령이 『삼국지』계를 떠돌고 있다.​"유교 명분론 세력이 2천여 년에 걸쳐 촉한을 띄워줘야겠다는 의지로 조위를 왜곡하고 손오를 비하했다"라는 음모론 말이다.​이런 음모론은 정사 『삼국지』나 『후한서』, 중국 본토 자료 등을 구하기 쉽지 않았던 때에나 먹힐 법한데, 요즘에도 이상할 정도로 어딘가에서는 음모론이 떠도는 모양이다.​아니, 음모론에서 그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거나, 자료에 잘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속이길 일삼는다.​그러나 매체의 발달과 함께 최소한 『삼국지』로는 월 단위의 역사 전개, 『후한서』로는 심지어 일 단위의 역사 전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여기서 그치지 않고, 천문우주지식정보별과 우주를 꿈꾸고 탐구하다 천문우주지식 서비스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천문 관측자료, 학.. 2024. 7. 19.
손권은 관우의 죽음 전까지 정말 손해만 보았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No. 위 지도는 적벽대전 직전과 직후의 상황이 섞여 있는데 하나씩 설명해보자면, ​ 유기, 손권령 강하, 서릉군, 기춘군으로 표시된 땅이 전부 원래 강하군이다. 물론 기춘군 일부는 양주 여강군 일부를 뗴어다 만들었지만, 대부분은 원래 형주 강하군 땅이었다고 보면 된다. ​ 요컨대 강하군은 그 자체로도 상당히 큰 영역이다. ​ 208년, 적벽대전 직전에 손권은 황조를 죽이고 하구 일대를 차지하는데, 이때 지도에 표시된 '손권령 강하'와 '서릉군', '기춘군'으로 표기된 영역을 차지한다. ​ (조조가 이때 기춘군을 장악했다는 설도 있지만, 강하 북부가 적벽대전 이후에나 조조의 수중에 들어가기 때문에, 조조가 적지 한복판에 있는 데다 여남군과는 산맥으로 가로막힌 기춘군을 차지했을 것 같진 .. 2023. 4. 17.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