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그리스가 1차 세계대전에서 세브르 조약의 내용을 승인하고, 참을성 있게 국력을 기르며 영토의 수복을 준비해나갔다면 어땠을까?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하고, 오늘날에도 동로마 제국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있었을까? 동로마 제국의 역사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무척 흥미로운 주제이다.
대체역사적 상상은 즐겁지만 또 어렵기도 하다. 단 하나의 사건만 바뀌어도 역사라는 물줄기는 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차근차근, 최대한 많은 가능성을 상상하며 그 중 가장 그럴싸한 상상으로 물줄기를 이리저리 돌리다보면, 꽤 그럴싸한 대체역사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젊은 그리스 국왕 알렉산드로스가 일찍 사망하지 않거나, 혹은 좀 더 온건하고 현실적인 정치인이 수상의 자리에 앉아 일단 세브르 조약을 다른 협상국들과 함께 비준했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첫 번째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상상해볼 수 있다.
그리스 독립전쟁 이후 팽배한, 옛 동로마 제국 영토의 수복을 꿈꾸는 '위대한 이상(메갈리 이데아)'의 여론은 결코 우습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세브르 조약 비준은 정권이 '지나친 양보'를 했다는 국민들의 불만을 불러올 수 있으며, 심할 경우 파시즘에 의한 정권 전복이라는 길로 흐를 수도 있다. 이 경우 이탈리아처럼 영토 분배에 불만을 품고 추축국에 가담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동로마의 영광은 영원히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정권이 에디르네(아드리아노플)와 이즈미르에 충실하게 보급선, 군사기지 등을 건설하며, 이런 사업이 차후 다가올 영토 수복전쟁을 대비하는 것임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지혜롭게 대처해나간다면, 국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군의 발목을 잡았던 보급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새로 획득한 영토를 굳히는데 성공할 수도 있다.
첫 번째 위기를 극복했다면 첫 번째 기회를 노려볼 수도 있다. 비무장 국제 관리구역으로 선포된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할 기회가 온 것이다. 그리스는 당당한 승전국의 일원이며, 아직 아타튀르크에게 패배하지도 않았다. 협상국은 당연히 적국이었던 터키보다는 동맹인 그리스를 우선시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콘스탄티노플을 돌려받는데 성공한다면, 그리스의 정권은 이 외교적 성과로 상당히 안정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아테네에서 콘스탄티노플로의 천도 논의, 영토내 투르크 및 무슬림 주민들의 문제 등이 새로운 이슈로 떠올라 영토 확장보다는 이쪽에 더 이목이 쏠릴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늘 바라는 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는다. 아타튀르크는 아직 건재하고, 그가 역사대로 터키 영토 내에서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인을 억누르면서 동, 남쪽의 국경을 안정시키는데 성공했다고 가정해보자. 역시 두 번째 위기와 기회가 찾아온다.
두 번째 위기는 터키의 선제 공격 가능성이다. 실제 역사에서 터키는 간신히 게릴라 병력을 끌어모아 저항하며, 그리스군의 보급선이 늘어진 틈을 타 역공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튼튼한 보급을 자랑하며 수비에 임하는 그리스군이 그 상대가 된다. 따라서 이 위기는 그리 어둡지 않다. 상황이 반대로 변한 만큼 결과도 반대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아타튀르크는 패배 후 집권에 실패, 심한 경우 세브르 조약이 이행되어 터키는 아나톨리아 중부를 제외한 모든 영토를 상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혜로운 아타튀르크가 애초에 선제공격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그리스, 터키 외의 다른 국가들의 역사 전개는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므로, 1939년이 되기 전까지 그리스와 터키의 국경은 세브르 조약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동부, 남부 전선에서의 승리와 권력욕에 눈이 먼 아타튀르크가 선제공격을 해오고, 이를 그리스가 훌륭히 격퇴하는데 성공한다면, 두 번째 기회를 노릴 수 있다. 터키의 항전 능력은 이 시점에서 완전히 분쇄되었으며, 그리스군은 역공, 쾌진격 끝에 앙카라 입성에 성공한다. 메갈리 이데아는 성취되고, 협상국은 그리스의 저력에 찬사를 보내며 콘스탄티노플을 넘겨준다. 물론 이런 가정은 그리스가 그만큼 새로 획득한 거점에서 충실하게 전쟁 준비를 해 왔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아타튀르크가 무력 공세 대신, 동, 남부 전선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외교 공세'에 나섰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세 번째 위기와 기회가 찾아온다.
세 번째 위기는 터키가 취한 외교적 공세의 성공이다. 아타튀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이래 수백년간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음을 주장하고, 협상국의 전쟁에 대한 피로와 겹쳐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의 영토로 돌아가버린다면, 그리스인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것이다. 이 경우 영토협상에 불만을 품고 이탈리아처럼 추축국에 가담해버린다는 최악의 전개가 이어질 수 있다. 그나마 나은 결말은 콘스탄티노플이 단치히 자유시 처럼 국제연맹의 관리구역으로 남는 것이다.
이상의 가정 중 긍정적인 부분들을 종합해보았을 때, 터키는 다음과 같은 결말에 다다른다. 아타튀르크는 집권에 실패하며, 터키에는 구 제국령을 수복하려는 민족주의 움직임이 파시즘을 불러온다. 지혜로운 아타튀르크와 그 후계자들이 집권한 터키는 추축국의 손길을 단호하게 거부했고, 2차 세계대전의 불길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대체역사 가정에서는 파시즘의 대두, 옛 동맹국인 독일과의 의리, 구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수복의 야망 등이 작용한 터키는 추축국에 가담하고 만다. 그리스는 이탈리아, 불가리아, 터키 3국에 분할되며, 독일군은 터키의 영토를 가로질러 중동, 그리고 소련령 캅카스까지 공격권에 넣는다.
바로 여기에 대체역사를 상상하는 행위의 어려움이 있다. 하나의 사건은 점점 그 범위를 넓혀가며 역사의 전개를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것이다.
독일이 유전 장악에 성공하고, 이에 따라 소련은 결국 독일에 항복, 우랄산맥 너머로 쫓겨나게 될 것인가? 아니면 독일은 생각보다 빈약한 인프라로 인해 사막과 산악지역에서 정체된 전선에 묶이고 말 것인가. 설령 소련이 항복하고 유럽 대륙을 정복한다 하더라도, 독일이 1945년 9월이나 46, 47년부터 전개될 미국의 침공을 막을 수 있을까? 미국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고, 여기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막대한 핵무기를 노르망디 해안에 쏟아부으며, 독일의 주요 도시들을 핵의 불길로 완전히 소멸시키며 진격해올까? 아니면 어느 시점에서 독일과 강화협상을 하며 또 다른 냉전시대를 시작할까.
생각이 너무 앞서나가면 이상한 길로 들어가는 법이다. 여기서는 그리스, 혹은 동로마를 자처하게 될 나라에 긍정적인 결말로 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 짓도록 하자. 독일은 실제 역사처럼 패망한다. 소련은 항복하지 않고, 미국과 함께 냉전시대를 연다. 패전국이 된 터키는 콘스탄티노플을 비롯한 상당한 영토를 그리스에 내주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가정에서도 위기는 늘 있다. 불가리아와 터키는 공산화될 것이고, 그리스에는 공산권의 확대에 따른 혼란이나 내전의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아니면 공산주의의 확대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다시금 파시즘이 대두하며, 미국이 이를 적극 지원하는 나쁜 전개로 나아갈 수도 있다.
아무리 긍정적인 대체역사 상상에도, 어두운 그늘은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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