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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비잔티움 연대기』에 실린 내용 정리

by 루모로마노 2020.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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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이름 : <반달족과의 대회전>, <바실리스쿠스의 몰락>, <서로마의 멸망인가, 제국의 통일인가>

 

 

 

 

 

리키메르 : 수에비족 귀족. 17년 동안 서방을 다스림. 다섯 명의 꼭두각시 황제 옹립.

아비투스 : 리키메르에 의해 폐위. 피아첸차의 주교가 됨.

마요리아누스 : 리키메르가 살해

안테미우스 : 리키메르가 살해

리비우스 세베루스 : ?

올리브리우스 : 472년 10월, 리키메르가 죽고 두 달 뒤 수종으로 사망. 이후 4개월간 서방 황위는 공위.

 

 

 

 

 

군도바트 : 리키메르의 조카이자 후계자로 자처. 글리케리우스를 옹립.

글리케리우스 : 레오 1세는 인정하지 않음.

레오 1세 : 동방 황제. 474년 2월 3일 사망.

레오 2세 : 동방 황제. 레오 1세의 사위인 제논의 아들. 즉위 당시 7세. 자신의 즉위식에 경의를 표하러 원형 경기장에 들어온 아버지를 공동 황제로 임명. 어머니는 아리아드네. 아홉달 뒤 사망.

제논 : 동방 황제. 레오 1세의 사위. 네포스 폐위 무렵 제논도 적들을 피해 달아남.(네포스 원조 불가) 475년 11월에 장모(레오 1세의 황후) 베리나가 군, 원로원, 시민들이 황제를 반대해 궐기했다고 말하자 아내와 어머니를 버리고 도주, 이사우리아의 산악 지대로 도망침. 베리나의 오빠 바실리스쿠스가 황위에 오름.(베리나는 애인이자 황궁 집사장인 파트리키우스를 황위에 올리고 싶어 했다. 이 파트리키우스는 레오 1세를 옹립한 장군 아스파르의 둘째아들 파트리키우스와 동명이인)

바실리스쿠스 : 동방 황제. 베리나의 애인 파트리키우스를 암살. 황태후 베리나의 지지를 잃음. 단성론 지지(알렉산드리아 전임주교 '교활한 티모티우스'의 부추김. 칼케돈 공의회 이후 쫓겨났던 자리에 복귀하기 위함), 중과세 부과 등으로 민심 잃음. 476년 청동대장간들이 있는 시장에 불이 나 율리아누스가 세운 공공도서관 바실리케까지 번짐. 라우수스 궁전도 소실. 바실리스쿠스에게 협력했던 일루스가 배신하고 제논에게 붙음. 바실리스쿠스의 조카 하르마티우스는 바실리스쿠스의 아내이자 자신의 숙모 제노니스와 불륜 관계였음. 그러나 마기스테르 밀리툼에 임명됨. 제논과 일루스는 이 사람에게 민정총독 자리를 주고 아들은 부황제로 삼아주겠다고 회유. 477년 7월 제논은 소피아 대성당에 숨은 바실리스쿠스가 항복하자, 그를 카파도키아로 유배. 그 해 겨울 추위와 굶주림으로 일가 사망.

율리우스 네포스 : 레오 1세가 임명한 서방 황제. 레오 1세의 처조카사위. 474년 글리케리우스를 물리치고 로마에서 즉위. 오레스테스 반란 이후 라벤나로 갔다가 추격을 패해 아드리아 해를 건너 살로나로 감.(거기서 글리케리우스와 어색한 만남을 가졌으리라 추정) 제논의 복위 후 그에게 자신의 복위도 부탁. 제논은 오도아케르에게 '귀족이 되고 싶다면 네포스를 복위하라'는 압력을 넣지만, 막상 오도아케르에게 건네진 서한은 이미 오도아케르를 귀족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오레스테스 : 군 총사령관. 475년 8월 율리우스 네포스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킴. 판노니아에서 태어나 아틸라의 궁정에 임관, 아틸라의 개인 정무관으로 일했음. 프리스쿠스 사절단 관련 암살 음모 저지에 중요한 역할을 함. 아틸라 사후 안테미우스 황제 치세에 근위대장 지냄. 네포스 치하에서는 총사령관으로 승진. 갈리아로 파견되어 원로원의 결정에 따라 서고트족 왕 유리크에게 오베르뉴를 양도하는 일을 맡음. 거기서 반란을 일으키고 로마 진군. 오도아케르 반란 이후 티키눔(지금의 파비아)으로 달아나 덕망 높은 에피파니우스 주교에게 피신처를 구함. 반란군은 거기서 그를 죽임.

프리스쿠스 : ?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 오레스테스의 아들. 10월 31일 황제 즉위. 여리고 연약, 잘생겼다고 한다. 오도아케르에 의해 폐위되고 연금을 받아 캄파니아의 친척에게 의탁. 폐위는 476년 9월 4일.

오도아케르 : 스키리족 출신. 오레스테스의 기수였음. 476년 8월 23일 병사들의 방패 위에 오름. 반란 이후 서방의 변화된 사정을 제논에게 보고. 그는 로마 귀족 서열과 Rex 칭호를 원함. 오도아케르가 황제 직위를 거부함으로써 이탈리아는 정치적 진공상태가 됨. 이에 따라 사람들은 로마 총대주교를 옹립하여 영적인 권위에 더해 세속적 권리를 부여하고, 황제처럼 화려하고 신비로운 의식으로 그를 둘러싸면서 중세 교종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평함.

테오도리쿠스 : 동고트족 지도자. 454년 동고트 족장 테오데미르의 아들로 태어남. 유년기에 10년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볼모 생활. 471년 아버지의 뒤를 이음. 트리아리우스의 아들 테오도리쿠스 스트라보(사팔뜨기)와 동고트족 패권을 두고 대립. 479년에는 마케도니아를 침공. 스트라보는 481년 사망. 바실리스쿠스 반란과 일루스 반란에서 제논을 도움. 그 공로로 파트리키우스이자 마기스테르 밀리툼이 됨. 482년에는 테살리아를 침공. 484년에는 콘술이 됨. 487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격. 동방 로마와는 적대와 동맹을 이렇게 반복함. 487~488 사이에 제논과 합의를 봄. 오도아케르를 타도한 후 제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동고트 왕국을 세우기로 함. 오도아케르는 490년 파비아(티키눔)에에서 테오도리쿠스의 군대를 포위, 섬멸할 뻔 했으나 서고트의 증원군이 테오도리쿠스를 구출. 이후 테오도리쿠스는 오도아케르를 라벤나 성으로 몰아넣음. 493년 2월 현지 주교가 휴전 주선. 테오도리쿠스, 오도아케르 공동으로 이탈리아 통치. 라벤나 궁전도 공유하기로 함. 3월 15일, 테오도리쿠스는 오도아케르의 동생, 아들, 부하를 초대한 연회를 연 후, 오도아케르를 살해. 오도아케르의 아내 수니길다는 감옥에 갇혀있다 굶어죽음. 테오도리쿠스의 볼모였던 아들 텔라네는 갈리아로 보내졌다가 살해됨. 자주색 황제복을 입고 이탈리아 통치 시작. 여전히 동방 황제에게는 파트리키우스이자 마기스테르 밀리툼으로 처신. 그는 황제만 사용하는 레게스(leges)가 아닌 에딕타(edicta)로 법을 통과시킴(?). 그가 만든 주화도 제논의 초상화. 로마인들은 군복무는 금지되고 대신 사무 행정을 담당. 524년 철학자 보이티우스를 투옥 후 천천히 죽는 교수형으로 잔인하게 처형(테오도리쿠스는 후회함). 526년 8월 30일 사망.

카시오도루스 : 테오도리쿠스의 총리대신.

보이티우스 : 반역죄 누명을 쓴 친구이자 전직 콘술 알비누스를 옹호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됨. 이 때문에 장인 심마쿠스까지 기소되었음. 옥중에서 『철학의 위안』을 썼고, 이는 이후 앨프레드 대왕이 앵글로작센어로 번역하기도 함.

아르보가스트 : 프랑크족

스킬리코 : 반달족

아이티우스 : 부계가 게르만족인 로마인.

* 이때의 상황을 좀 더 철저하게 재구성해보려면 더 많은 자료를 볼 필요가 있다. 줄리어스 노리치 역시 해당 챕터 이름부터 이 사건을 두 개의 로마 중 하나가 멸망한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하나의 로마 제국에는 흔히 두 명의 황제가 있어왔듯 두 황제가 있었을 뿐 분열된 것은 아니며, 그 중 하나가 폐위되고, 폐위시킨 군인은 다른 한 명에게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두 명이었던 황제가 하나가 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확대 해석해도 476년의 사건은 '서로마 멸망'이 아니라 '서방 영토 상실' 정도로 보아야 한다. 그것도 또 해석에 따라 '오도아케르의 몰락'까지 늘려 잡을 수 있다.

또한 최후의 일곱 황제가 옹립과 폐위를 반복하는 동안 벌어진 숨가쁜 서방 정계의 변화는, 동방 황제인 레오 1세, 레오 2세, 제논, 바실리스쿠스으로 이어지는 동방 정계의 혼란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좀 더 자세하고 촘촘하며, 역동적인 역사를 재구성할 수는 없을까.

여하튼 위에 간력하게 언급된 사람들, 사건들을 좀 더 상세히 파헤쳐보고 싶다. 다른 좀 더 다양한 책들을 살펴봐야겠다.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

하굣길에 우연히 마주친 소녀는, 암살 시도를 피해 도망친 국가원수 미리안이었다. 소년 주견하는 도와 달라며 내민 소녀의 손을 잡았지만, 음모에 휘말리며 부모를 잃고, 복수를 위해 전장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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