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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조-원술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본 유비-원술 전쟁 (6)

by 루모로마노 2024.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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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여포 제거

 

197년 원술의 세력은 회수 이북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원술은 공손찬을 치느라 발이 묶여 있고, 이제 막 원술에게서 독립한 손책도 여포와 손을 잡을 상황은 아니었다.

연주에서의 빚을 갚아줘야 할 조조, 서주를 빼앗긴 원한이 있는 유비 모두 여포에게 이를 드러낼 순간이 왔다.

198년 봄(1월~3월), 여포는 멀리 북쪽 하내군에서 군마를 구입했다. 군마를 구입한 곳이 하내군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당시 하내군은 하내태수이자 거기장군인 장양이 다스리고 있었다. 장양은 여포가 원소에게서 도망쳐 나올 때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어쩌면 여포도 원술이 무너지면서 고립을 염려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장양과의 연계를 확인하는 한편으로, 장안에서 기주와 연주를 거쳐 서주로 오기까지 소모된 기병 전력을 확충하려 한 듯하다.

『연의』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는 여포가 조조와 계속해서 적대한 듯 표현하지만, 여포는 조조가 협천자에 성공한 이래 꾸준히 화친을 시도했다.

진규와 진등 부자의 공작에 넘어가고 있었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에 이 화친 시도는 성공적인 듯 보였다. 황제는 여포에게 조조나 손책과 연계하여 원술을 치라는 명령을 내렸고, 조조는 여포에게 좌장군 자리를 내려주는 등 은혜를 베풀며 그를 철저히 속였다.

여포가 하내에서 군마를 구입한다고 해서 연주나 예주를 통과하며 조조나 유비에게 가로막힐 염려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유비가 여포의 군마를 빼앗는다.

여포에게 있어 이는 단순히 유비의 군마 도둑질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조조와 유비가 마침내 여포를 적대하기로 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군마 공급이 끊긴 여포가 더는 기마 전력에 있어 우위에 설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에 여포는 즉각 고순과 장료를 보내 유비를 공격한다. 『연의』는 이 공격에 유비가 즉각 소패를 빼앗긴 것처럼 표현하지만, 유비는 최소 7개월(3월~9월), 최대 9개월(1월~9월)이나 여포의 맹공격을 견뎌낸다.

조조는 여포 전선은 유비에게 맡겨 놓으면서, 일단 하후돈을 파견해 유비를 도왔다.

유비가 여포를 막는 동안 조조는 허도 주변을 안정시키는 데 집중했다. 진국을 공격한 원술을 격파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진국이 허도가 있는 영천군 동쪽이라면, 남양군은 허도의 서쪽이었다. 3월, 조조는 다시 남양의 장수를 쳐 완현을 점령하고 남쪽으로 몰아붙였다. 4월, 조조는 배무를 파견하여 관중의 군벌 단외와 연합해 이각을 토벌케 했다. 5월, 비록 조조는 원소가 허도를 노린다는 첩보에 물러났지만, 반격하려는 장수와 유표 연합군을 격파하고 7월, 허도로 귀환한다.

9월, 여러 달을 버틴 유비가 마침내 한계에 달해 소패를 빼앗기고 서쪽으로 물러났다. 조조는 유비를 맞이하러 동쪽으로 향했다. 조조와 유비는 예주 양국(梁國)의 경계에서 만났다. 곧바로 연합작전을 개시한 조조와 유비는 10월, 팽성을 점령했다.

여포는 조조-유비 연합과 맞서 싸웠지만, 흑산적을 토벌할 때 함께했던 장수 성렴만 잃고 패퇴했다.

그 후 여포는 조조에게 항복하려 했지만 진궁은 이를 말리며 계속해서 원술과의 동맹을 주장했다. 이것만 봐도 『연의』에서 묘사되는 '참모 진궁'이 얼마나 사실과 동떨어진 것인지 알 수 있다. 포위망을 뚫고 원술과 동맹을 맺는 시도 자체가 실패하긴 했지만, 성공했어도 의미없는 일이었다. 작년(197년)의 패배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원술이 무슨 힘이 있어서 여포를 구하단 말인가? 이 시점에는 이미 진궁도 현실 감각이 없어져 일종의 착란을 일으킨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11월, 하내태수 장양이 부하 양추에게 살해당했다. 여포의 몰락이 확정된 상황에서 계속 여포와 연계하려는 장양에게 불안을 느낀 듯하다. 장양은 여포를 직접 구할 수 없자 관중 일대를 공격하여 조조의 포위르 풀려고 했는데, 양추는 그런 장양을 죽이고 조조에게 항복하려 했다. 그러자 이번엔 또다른 장양의 장수 수고가 양추를 죽였다.

수고는 장양군을 이끌고 원소에게 귀순하기 위해 퇴각, 하내군의 사견(射犬)이라는 곳에 주둔 한다.

결국 순유와 곽가의 진언대로 수공을 펼친 조조에 의해 하비성이 함락되었다. 12월 24일, 조조는 여포와 진궁, 고순의 머리를 베었다.

 

 

 

 

 

에필로그.

 


193년부터 197년까지, 배후에서 천하의 일을 조종하던 원술은 198년 한 해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다음해인 199년 2월에 조조가 유유히 허도로 돌아갈 때도 그냥 지켜만 보았고, 4월에 조조가 황하를 건너 수고를 죽이고 하내군을 차지하면서 조조-원소 전쟁이 시작되었음에도 그냥 지켜만 보았다.

그러다 여름(4월~6월), 원술은 궁실을 불사르고 여강과 구강 사이, 또 강하군과의 경계를 이루는 대별산맥으로 숨어들려 시도했다. 원술은 잠산으로 향했다. 거기에 부하장수 뇌박과 진란이 있었다.

그러나 원술이 잠산을 찾아갔을 때, 뇌박과 진란은 부하고 뭐고 다 저버린 채 198년 한 해 동안 사치나 부리던 원술을 더는 주군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부하들에게 버림받은 원술은 다시 수춘으로 돌아가려 했다. 거기서 다시 동쪽으로 회수를 타고 내려가, 서주만 어떻게든 통과하면 청주에는 조카 원담이 있었다. 원소 또한 황제가 될 야심이 있었으니, 원술으 그에게 황위를 물려줄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 해 3월에 마침내 원소가 공손찬을 죽이고 하북을 통일한 사실에 생각이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이때 원술이 원소에게 보낸 서신은, 죽음을 앞뒀다는 직감 때문인지 원소를 향한 증오나 경쟁심은 전부 내려놓은 듯 보인다. 오직 '원씨야말로 새로운 황실이 되어야한다'라는 그의 신념, 혹은 집착만이 절절히 느껴지는 편지다.

하지만 원술은 서주는커녕 수춘에 도착하기도 전에, 6월에 수춘 남쪽 80리 되는 곳인 강정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원술의 이도 저도 아닌 행보는 유비에게 좋은 일만 해주었다. 유비는 원소에게 귀순하려는 원술을 저지하기 위해 조조의 명을 받아 서주로 향했고, 그대로 옛 기반을 되찾았다.

8월, 조조는 장패와 동맹하여 청주 공격을 맡기는 한편, 자신은 황하를 건너 위군 여양현을 공격하면서 원소군과 직접적으로 교전하기 시작했다.

조조를 몰락 직전까지 몰아넣고, 간신히 서주에 자리잡은 유비를 비참한 떠돌이로 전락시키고, 여포와 진궁을 인형처럼 조종하고, 손책을 손아귀의 칼처럼 휘두르던 원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었다.

천하의 정세는 원술이 수년 간 휘저어놓은 것과는 상관 없이 흘러갔다. 원술이라는 시련은 새로운 영웅들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조조는 원소에게서 벗어나 자립했다.

유비는 조조, 여포, 원술과 싸우며 군웅으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손책은 전설적인 무공으로 강동의 주인이 되었다.

위, 촉, 오를 이룰 조조, 유비, 손책이 원술이라는 거름 위에서 꽃을 피웠다.

 

 

 

 

삼국지 군벌가 둘째아들

삼국지의 촉한 황제 유선에 빙의했다. * 일부 회차에는 작가님이 직접 작성하신 지도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seri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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