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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

슈타인호프, 『내가 히틀러라니!』

by 루모로마노 2020.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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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조국』, 『높은 성의 사내』, 『나의 적들 앞에서』 같은 ‘독일 혹은 추축국이 승리한 뒤의 대체역사’에만 익숙했던 나에게, 이 작품은 다소 신선했다. 요즘이야 ‘역사가 변해가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지만, 나는 ‘역사가 변하고 나서, 그 세상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그린 작품을 훨씬 많이 봤었으니까.

『내가 히틀러라니!』는 그전에 읽었던 대체역사소설들과는 많이 달랐다. ‘역사가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아니, ‘역사를 바꿔가는 과정’이라고 해야 좀 더 정확한 표현이 되겠다.

단순히 소설 속 역사가 어떻게 실제 역사와 달라졌는가를 보여주면, 그건 소설이 아니라 대체역사 설정집에 가까워진다. 당시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선택’을 해서 역사가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려면, 많은 제약이 걸린다. 일단 그 당시 사람들이 ‘모르는 미래’의 전개를 이야기한다든가,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

따라서 많은 ‘역사가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은, ‘시간여행을 한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모르는 미래’에 대한 지식을 갖췄기 때문에, 앞서 이야기한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그 지식을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재미’를 품고 소설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해진다.

지나치게 편리한 방법이고, 또 워낙 많이 쓰이는 방법이기 때문에 나는 꺼려하지만, 그래도 얼마만큼은 재미를 보장하는 방법이다.

슈타인호프 작가 역시 ‘시간여행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여기에 몇 가지 더 재미있는 요소들을 추가한다.

게임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 중, 특히 나치 독일을 플레이하다보면, 나치가 실제로는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게 된다. 패배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과감히 우회, 승리를 위한 선택지만을 고르게 된다,

예를 들어 미국이 개입하기 전에 연합국을 확실히 몰락시키고, 그 후에 소련과의 전쟁에 나선다든가.

터키 일대를 제압하고 소련 최대의 유전지대인 바쿠를 노린다든가.

아예 나치 독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유저들은 내전을 일으켜 민주공화국을 만들거나, 제2제국을 복원하는 일도 가능하다.

이런 ‘최상의 선택지’들은 흥미롭기는 해도, 주인공 세력이 상당히 강력해지기 때문에 후반부의 긴장감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 긴장이 줄어들면 그만큼 재미도 떨어진다.

따라서 슈타인호프 작가는 이 긴장감을 배가시키기 위해, 이미 ‘독소전쟁’이 시작된 뒤, 그리고 실제 역사에서 행해졌던 학살까지 일부 진행된 뒤의 나치 독일을 배경으로 삼았다.

이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학살로 인해 멀어진 동유럽의 민심을 수습하고, 이들의 마음을 돌려 소련에서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등의 독립운동 세력과 연대한다.

-소련을 굴복시키고 영국과 어떻게든 평화협정을 맺는다.

-미국과는 어떻게든 평화 관계를 회복하고, 일본의 태평양 전쟁에 휘말려 들지 않도록 한다.

대략 이러한 어려운 과제들을 수행하게 된다.

과정도 흥미롭고, 전쟁 묘사도 흥미롭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간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도, ‘밀리터리 마니아’가 ‘역사물’을 쓸 때 발생하는 몇 가지 약점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장면’,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장면’에서 그런 약점이 두드러진다. 총통을 숭배하는 세 미녀를 비서로 삼는 장면, 그녀들과 애정행각을 벌이는 장면에서는 ‘연애 경험이 전혀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숭배하는 대상이라 해도 저런…… 혹시 50, 60년대 소설을 염두에 둔 걸까? 하고 생각해봤지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기계의 제원이나 역사의 전개, 뭐 이런 건 잘 아는데, 실제로 사람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밀리터리 마니아’가 흔히들 저지르는 실수가 그대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전에 다른 글에서, 대체역사물 또는 역사물에서 ‘민주주의’나 현대의 가치를 내세웠을 때 왜 배척을 당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민주주의를 비롯한 현대의 가치가 좋은 것이라는 건 아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은 것인지 설명할 만큼 작가가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었다.

이와 마찬가지 원리다. 밀리터리 마니아들, 그와 맞닿아 있는 역사 마니아들이 종종 저지르는 실수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

‘사람’ 공부를 하지 않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 없다. 역사적 사실과 기계의 제원을 달달 외워나가는 ‘자랑스러운 나’의 이미지만 있다.

실제로 나는 이런 사람들과 몇 차례 대화를 나눴다가 씁쓸한 기분이 되곤 한다. 뭔가 머릿속에 든 건 많다. 그런데 상대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지, 맥락에 맞는 대화인지, 그런 건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가 아는 지식’을 늘어놓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이다.

이게 소설가에게 왜 문제가 되냐면, 캐릭터 형성, 인물 간 대화 모든 측면에서 대단히 어색한 모습이 계속 연출되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체역사’를 그려내는 데에도 문제가 생긴다. ‘무기’에 대해서는 알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모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빚어지는 ‘외교’와 ‘정치’는 제대로 그려내질 못한다. 그러다 보니 ‘신무기 개발’에 모든 해결책을 의존하거나,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교섭’을 넘어서는 ‘우연’에 의존한다. 작품 전개 자체가 엉망으로 흘러갈 위험이 생긴다.

『내가 히틀러라니!』 3권의 결말이 이런 약점을 그대로 드러낸다.(*2017년의 나는 ‘무척 마음에 드는 결말’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점을 지적하지 않을 순 없다)

소련의 굴복은 ‘스탈린의 죽음’이라는 아주 우연한 사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영국의 굴복은 스탈린의 죽음이 직접적 원인이면서도, 간접적으로는 주인공이 개발한 ‘신무기’가 원인이 된다. 미국은 그냥 주인공의 수작에 편의적으로 놀아나며, 이 틈새를 메우려고 들어가는 에피소드가 이우 왕자 에피소드다.

정리하자면 장점과 단점이 명확히 공존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면서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요소들도 많다. 독자로서는 그냥 즐기면 되고, 작가를 꿈꾸는 이라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

하굣길에 우연히 마주친 소녀는, 암살 시도를 피해 도망친 국가원수 미리안이었다. 소년 주견하는 도와 달라며 내민 소녀의 손을 잡았지만, 음모에 휘말리며 부모를 잃고, 복수를 위해 전장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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