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속도를 조금 높여서 3화를 써냈습니다. 285화~287화에 해당하지요.
그래도 비축분을 유지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좀 더 속도를 높여야겠습니다. 어떤 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매일 5천자를 써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생업, 블로그 업데이트, 일상을 제외하면 취미는 오로지 독서로 제한을 두고, 그 외에는 소설에 대한 생각만 하면서 살면 그런 집필 속도가 가능할까요? 한 번 시도해봐야겠습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질문에 좀 답을 해볼까 합니다.
제 작품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는 과연 대체역사소설이라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질문이 나온 이유는 많은 독자 분들이 '역사를 바꾸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체역사소설에 익숙하시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는 '역사가 바뀐 이후'를 보여주는 대체역사소설이죠.
처음에는 이런 질문이 나오는 상황 자체가 좀 의아했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겐, 대체역사소설은 '역사가 바뀐 이후'를 보여주는 게 더 당연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웹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웹소설을 딱히 의식하지 않고 써내려갔습니다. 굳이 따져보자면 제가 2002년~2003년 무렵에 읽었던 라이트노벨이나, 전민희 선생님, 이영도 선생님의 작품들, 해외 장르 소설(특히 잡지 『판타스틱』에 소개되곤 했던)을 본받아 쓴다는 감각으로 접근했지요.
제가 처음 접한 대체역사물은 소설이 아니라 영화였는데, 바로 <2009 로스트 메모리즈>입니다. 2003년에 영화관에서 봤던 것 같아요. 이 작품 역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에 실패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되, 주된 배경은 그렇게 변한 역사 이후, 여전히 일본의 지배를 받는 2009년 조선입니다. (『비명을 찾아서』는 2007년인가 2008년에야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다음으로 접한 대체역사물은 애니메이션 <코드기어스>일 겁니다. 이 작품 역시 나폴레옹의 영국 상륙이 성공했다는 대체역사적 가정에서 출발, 황력 2000년대(서기로는 1980년대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의 식민지가 된 일본을 주요 무대로 삼습니다.
소설로 접한 최초의 대체역사물은, 너무나도 유명한 걸작 『당신들의 조국』입니다. 나치 독일이 2차 대전에서 승리해 유럽을 지배한다는 가정에서 출발, 그런 세상의 베를린을 살아가는 한 독일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입니다. 역시 역사를 직접 바꾸기보다는, 이미 그렇게 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지요.
소설 『풀 메탈 패닉!』도 그렇습니다. 여기는 소련이 여전히 붕괴하지 않고, 중국이 남북으로 분단된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군대 가기 전에 15권까지 사서 모았는데, 생각난 김에 16권부터 다시 사서 모아봐야겠군요.
소설 『쌀과 소금의 시대』는 '변해가는 과정'과 '변한 이후'를 보여주는 두 가지 경향의 중간 쯤에 있는 소설이라 하겠습니다. 흑사병이 퍼지던 14세기부터 현대까지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각 장의 주인공들은 역사의 주역이라기보다는 그런 현장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거든요. 예를 들어 첫 장에서 제시되는 분기점은 유럽이 흑사병으로 아예 전멸 수준의 타격을 입었다는 겁니다. 누군가가 바꿨다기보다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게 지금 웹소설 환경에서의 대다수 대체역사소설들과는 다른 점이지요.
해리 터틀도브의 『비잔티움의 첩자』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미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창시하지 않고 정교회로 개종했다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역사 속에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류의 발전과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들과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쪽에서 온 유목민들에게서 '망원경'을 입수해 전파한다든가, 종두법을 발견한 의사에게 어쩌다보니 영감을 준다든가 하는 식이죠.
저는 제가 읽은 대체역사소설 중에서도 『비잔티움의 첩자』를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거친 난세를 그려나간 전쟁소설과는 거리가 멉니다. 대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가고 조금씩이나마 진보해나간다는 주제를 전하고 있지요.
특히 이 작품에선 "로마의 가장은 가족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지만, 그걸 실제로 행사하는 놈은 결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제가 대체역사소설을 쓸 때 항상 가슴에 새기는 말입니다. 아무리 옛날이 야만적이고 잔혹한 시대라 할지라도, '사람'이 따스한 마음의 동물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교훈을 전해주죠.
지금도 이 작품의 가르침은 과거 사람들을 제가 자칫 사이코패스나 외계인처럼 그려내지는 않는지 항상 경계하게끔 합니다.
에세이집 『만약에』도 상당이 추천하는 책입니다. 특히 존 키건 경의 '히틀러가 소련 대신 터키를 공격했다면'의 가정이 마음에 들었지요. 역사학자들이 직접 집필한 대체역사 에세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지만, 타임슬립이나 다른 요소 없이 오로지 그 당시에 충분히 가능했던 우연이나 변덕에 의해 역사가 어떻게 바뀔 수 있었을까를 서술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 외에도 영향을 받은 작품을 들자면 카를로 젠의 『유녀전기』를 들 수 있겠습니다. 원래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의 프로토타입은 21세기를 배경으로 한 혁명물이었는데 (루우가 메인 히로인이었으며, 미리안은 최종보스였습니다.), 『유녀전기』를 보고 나서 1920년대로 배경을 옮겨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대대적인 수정을 가했습니다. 그것이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이지요.
『유녀전기』는 대체역사소설인가 하면 조금 애매한데, 여기는 아예 마법이 존재하는 이세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잘 읽어보면 마치 우리 세계의 역사를 비튼 듯한 모습을 찾을 수 있죠. 독일은 '대독일 통일'을 이루어내서 여전히 황실이 남아 있고, 스칸디나비아는 통일된 것 등이 말입니다. (작중에서 패러독스 사의 게임 <빅토리아> 시리즈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아마 이 게임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크루세이더 킹즈>와 <하츠 오브 아이언>을 뒤섞은 느낌을 내고 싶지만요)
이토 케이카쿠, 엔조 도 선생의 『죽은 자의 제국』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이 실존 인물이고, 그 실험 결과가 보편화되어 시체들이 노동기계로 쓰이는 빅토리아 시대를 가정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왓슨이 아직 셜록 홈즈를 만나기 전,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었을 때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로빈슨 크루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80일간의 세계일주』, 『해저 2만리』 등 여러 고전 작품에 대한 오마주가 일품인 작품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못 읽어봐서, 언젠가 읽고 『죽은 자의 제국』을 다시 읽어볼까 합니다.
이러한 독서 배경 때문인지, 저는 『미연시인데 연애를 할 수 없는 건에 대하여』나 『내가 히틀러라니』를 읽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싶었죠.
'변해가는 과정'을 직접 다룬 소설은 언젠가 꼭 써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일단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의 완결까지 집중하고, 그 후에 『삼국지 대황제 유선』에서 제 역량을 시험해보려 합니다.
여기서 경험을 좀 쌓고 나면,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의 프리퀄을 써 볼 생각입니다. 후삼국 시대를 무대로 하되, 무협의 방식을 응용한 뭔가를 좀 만들어보고 싶거든요. 물론 그러려면 무협 공부를 좀 해둬야겠죠?
그리고 이토 케이카쿠 선생의 『학살기관』과 비슷한 느낌으로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의 시퀄을 써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해서 프리퀄,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 시퀄의 3부작을 계획 중입니다.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는 저 루모로마노가 2000년대 초반의 판타지 소설가 지망생, 2000년대 중반의 라이트노벨 작가 지망생(프로토타입은 시드노벨 공모전에서 낙방했었습니다)에서 '웹소설 작가'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 준 작품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접근했다가 쓰면서 배우느라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죠 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는 건,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셨던 수많은 분들과, 아낌없이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내일은 어제보다 좀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열심히 읽고, 또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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