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304화 교정고를 받았습니다. 이건 주말 동안 제가 한번 더 살펴보고 출판사에 보내야 해요.
이번주 초고는 305화~308화를 완성했습니다. 300화를 넘어갔다는 게 무척 감격스러웠는데, 또 지나놓고 보니 하나의 과정이더라... 하는 느낌입니다.
두 후배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맙게도 초대를 받았는데, 전공자 중에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내 작가가 된 사례가 많지 않다보니 제 모습이 썩 훌륭해 보였던 모양입니다. 후배로부터 '존경'한다는 말을 듣으며 결혼식 초대를 받으니 가슴이 벅차오르더군요. 저도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어 하객으로 참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러고보니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2012년, 4학년이었을 때 과에서 답사를 갔었습니다.
그때 자그마한 백일장 같은 걸 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백일장을 마치고 교수님이 4학년 왕고(!)인 저한테 후배들에게 들려줄 말 한마디를 부탁하셨습니다.
당황하면서도 어찌어찌 가까스로 말을 지어냈는데, 대충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웃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때로부터 9년, 참으로 부끄러움이 많은 삶을 살았으나, 그 말 한마디에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 기분이 들더군요.
이처럼 후배로부터 들은 '존경한다'는 한 마디는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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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웹소설이 독자에게 주어야할 기쁨도 이런 종류의 것이 아닐까, 하고요.
다소 쓴소리를 해보자면 지금의 문단문학은 현실의 '고발'에 치중한 느낌이고, 일부 웹소설도 흥행을 위해 '승리의 쾌감'을 주는 데 몰두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위로'는 누가 해줄까요.
당신의 삶은 헛되지 않았다, 당신의 삶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당신은 소중하다, 이런 위로 말입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도 연민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그 연민의 부족은, 누구도 제대로 된 연민을 받아본 적 없다는 사실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걸어가야 할 웹소설의 길은, 연민하는 이야기여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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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말합니다. 내가 당한 것이 있으니 갚아주어야 한다. 그 전에 평화는 없다, 고.
물론 정당한 분노는 분명 필요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사이사이에는, 분명 평화조약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근슬쩍 끼어들어 증오를 조장하는 무리가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분노의 대상을 '레벨업하기에 적당히 만만한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을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이라 불확실합니다만, 전민희 선생님께서는 『룬의 아이들 윈터러』 서문에서 '모두가 힘을 합쳐 적을 물리치는 원기옥'의 멋짐에 대해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분노가 정당하고 불가피하다면, 그 대상은 '모두가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맞서 싸울 수 없는 강력한 적'을 향해야 한다고 봅니다.
영화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것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제가 걸어가야 할 웹소설의 길도,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는 그런 길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래야 할 텐데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는 너무 멀리 반대 방향으로 가버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뭐, 괜찮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오늘 배우고 생각한 것들을 쓰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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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덧붙이고 싶은 말도 이것입니다.
만약 제가 지금 쓰는 작품의 부족함에 그냥 좌절해버렸다면, 독자분들께서 저를 찾아주시는 영광은 얻을 수 없었을 겁니다.
저는 서른이 넘어서 처음 데뷔하면서, '초조해하지 않는 방법'을 배워가는 듯합니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너무들, 초조해합니다. 그걸 탓할 수는 없습니다. 저 역시 저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일찍 데뷔한 선배 작가들을 보면서 초조해했으니까요.
코인에 뛰어드는 분들(물론 탈세를 일삼으면서 코인을 하는 그런 사람들 말고)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집안에서 금수저 물고 태어난 또래들, 혹은 투자 기회를 잘 만난 친구들은 저만치 앞서 나가는데, 나 혼자 뒤처진 것은 아닌가 하는 초조감.
가끔 저같은 새내기 작가에게도, 상담을 하는 지망생 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아직 많이 어린 데도 초조해하는 분들도 있죠.
하지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룬의 아이들 윈터러』를 읽고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해서, 서른이 넘어서야 데뷔했습니다. 20년 동안 글을 써서야 겨우 이룬 것입니다. 저는 어떤 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그분들 나이만큼 수련을 쌓은 뒤에야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초조함은 판단력을 흐리게 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20년쯤 기반을 다져온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인데, '옆사람은 순식간에 20년 어치를 쌓았다'는 착각을 해버린 겁니다.
또 이런 착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착각 말입니다. 그러나 픽션이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회귀'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건 일단 보잘것 없어도 지금 가진 것들을 긁어모아, 앞으로 쌓아갈 것들의 기반으로 삼는 일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20년이나 글을 썼으면서 고작 그 정도 글솜씨냐"고.
하지만 저는 이제 그런 말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쿨해서가 아니라, 그 말은 아무 소용이 없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고 아무리 후회한들 저는 쌓아온 20년 세월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회귀할 수 없습니다.
제가 살아갈 방향은 앞입니다. 앞으로 수십년, 혹은 의학이 허락한다면 100년 이상을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초조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에서 초조함이라는 구름을 걷어내고 나면, 왔던 길과 가야 할 길이 보일 것입니다. 내가 손을 내밀어줘야 할 사람과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보일 것입니다.
그걸 보고 나면 묵묵히, 걸어야만 합니다.
저도 묵묵히 걷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피곤한 걸음에 위로가 되는 작품을 쓰겠습니다. 지금 작품으로 안 된다면, 다음 작품으로라도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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