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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창작 노하우 공유

초능력자가 있는 세계에서의 민주주의

by 루모로마노 2021.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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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의 힘은 어떻게 세계의 제약을 받는가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여러 창작물을 읽다 보면, 독자들 사이에서 이런 의문이 많이 제기되더군요.

“압도적으로 우월한 초능력자들이 있는 세계인데도 어떻게 공화정, 혹은 민주정이 가능한가.”

이 의문은 이렇게 되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공화정 또는 민주정에 도달한 세계에서 어떻게 초능력자들을 ‘압도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역사에 대해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이야기할 때, 간과하는 요소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악마성, 예를 들어 노예제를 비롯한 신분 제도나 착취, 탄압 같은 것들을 ‘역사 상 어쩔 수 없었던 것들’이라고 이야기한다는 겁니다.

백보 양보해서 이 주장이 옳다고 한다면,

반대로 노예해방과 신분제의 철폐, 착취와 탄압에 대한 저항과 승리 역시 ‘역사적으로 당연한 흐름’의 일부라는 주장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도덕이나 윤리의 불완전함, 유한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노예제 같은 것에 대해서는 영구불변한 무언가라고 믿기도 합니다. 이런 경향은 모순, 자가당착, 이중잣대 같은 말로 형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가치가 없다면, 그것은 노예제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겁니다. 결국은 유한한 인간의 산물이니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 그 종의 불완전함을 전제로 합니다.

초능력자를 ‘인간’으로 규정하는 시점에서, 초능력자는 불완전해집니다. 즉 공화국이나 민주주의를 작품 속에서 억지로 탄생시키기 위해 초능력자의 힘에 제한을 둔다든가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인간’(혹은 넓게 보아 ‘사람’의 범주)의 이야기라고 규정한 시점에서 초능력자의 불완전함은 예정된 것입니다.

착취는 욕망에서 오며, 욕망은 결핍에서 나옵니다. 요컨대 초능력자 영주가 백성들에게서 무거운 세금을 뜯어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한다면, 영주에겐 ‘맛있는 음식’이 결핍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초능력자 영주는 굶어 죽을 수 있습니다.

만약 초능력자 영주가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주에겐 욕망이 발생하지 않습니다.(미각의 진화는 에너지 섭취의 효율성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욕망이 없으니 착취도 하지 않을 것이고, 더 나아가 지배도 하지 않을 겁니다.

화려한 거주지에 대한 욕망이 있는 자는 ‘잠을 못 자거나 목욕 등으로 청결을 유지하지 못하면 죽는 자’입니다.

성욕으로 타오르는 초능력자는 ‘다음 세대를 생각해야 할만큼 유한하거나, 외로움이라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완전한 초인 영주’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이 원리는 인간사의 모든 부분에 적용됩니다.

욕망을 초월, 아예 생물의 한계를 벗어난 자는 ‘인간’으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이때의 초능력자는 ‘신’이 되고, 당연히 사고방식도 인간과는 달라집니다. 요컨대 완전무결한 존재는 오락을 추구할 필요도 없고, 더 높은 권력을 추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모든 게 완결되었으니까요.

자, 남은 초능력자가 아닌 인간들은 신 아래에서 ‘천부인권’을 논하며 민주주의 정부를 만들어나가면 됩니다. 끝.

억지로 이런 가정을 해봅시다. 한없이 완벽에 가까운데, 단순히 재미만으로(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미 재미가 결핍되어 있으니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인간을 핍박하는 경우.

인류는 이것을 ‘괴물’이라고 불러왔습니다.

이 경우에도 ‘통치체제’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결말은 둘 중 하나로 정해집니다.

인간이 괴물을 토벌하든지,

괴물이 인간을 멸종시키고 괴물만의 세계를 만들든지.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한없이 완벽에 가깝지만 어쨌든 괴물들이 세상을 차지하고 나면, 이 시점에서 괴물들은 인간의 지위를 차지합니다.

즉 괴물들 역시 그 ‘불완전한’ 요소 때문에 인간이 겪어야 했던 모든 고난이 펼쳐지는 겁니다. 괴물들 사이에서의 불평등, 사회적 모순…… 그리하여 괴물들 사이에서는 혁명이 일어나고 괴물들의 공화국과 민주주의가 탄생하겠죠. 평균이 조금 높아졌을 뿐, 같은 세계가 반복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네안데르탈인에게 이와 비슷한 짓을 한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살아있는 괴물들입니다.

‘괴물들 사이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한 김에, 이런 이야기를 덧붙여보겠습니다.

혁명은 반드시 하층 민중만의 힘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혁명을 연구하고 평등의 사상을 발전시킨 상류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요.

즉, 일단 초능력자가 ‘인간’의 범주에 들어왔다면, 인간만큼 잔혹하고 사악한 초능력자도 있겠지만, 반드시 인간처럼 자애롭고 선한 초능력자도 존재한다는 겁니다.

또 초능력자가 ‘욕망하는 존재’라면, 반드시 기존 질서에 반발하는 초능력자가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중세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창작물을 읽을 때, 간혹 사악한 상류층이 저지르는 잔학한 행동에 불쾌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 행동 자체가 주는 불쾌감도 있지만,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어서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 건 아닐까요?

즉 잔혹하고 억압적인 영주의 이미지야말로(실제로 이것은 근세인들이 중세인들에게 억울하게 덮어씌운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불쾌한 골짜기’로서 우리의 의식 깊은 곳을 자극하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전근대가 생각보다 소탈한 시대이며, 우리의 상식이 이미 그들의 상식이기도 했다는 걸 배울 때마다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집니다.

 

 

그리고 소녀는 대원수가 되었다

하굣길에 우연히 마주친 소녀는, 암살 시도를 피해 도망친 국가원수 미리안이었다. 소년 주견하는 도와 달라며 내민 소녀의 손을 잡았지만, 음모에 휘말리며 부모를 잃고, 복수를 위해 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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