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조조39 조조-원술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본 유비-원술 전쟁 (6) 8장. 여포 제거 197년 원술의 세력은 회수 이북에서 완전히 무너졌다.원술은 공손찬을 치느라 발이 묶여 있고, 이제 막 원술에게서 독립한 손책도 여포와 손을 잡을 상황은 아니었다.연주에서의 빚을 갚아줘야 할 조조, 서주를 빼앗긴 원한이 있는 유비 모두 여포에게 이를 드러낼 순간이 왔다.198년 봄(1월~3월), 여포는 멀리 북쪽 하내군에서 군마를 구입했다. 군마를 구입한 곳이 하내군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당시 하내군은 하내태수이자 거기장군인 장양이 다스리고 있었다. 장양은 여포가 원소에게서 도망쳐 나올 때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어쩌면 여포도 원술이 무너지면서 고립을 염려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장양과의 연계를 확인하는 한편으로, 장안에서 기주와 연주를 거쳐 서주로 오기까지 소모된 기병 전력.. 2024. 7. 13. 조조-원술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본 유비-원술 전쟁 (5) 5장. 원술의 강동 장악과 상실 193년 3월, 조조에게 패배한 원술은 양주 구강군 수춘현으로 왔다.여기서 원술이 수춘을 장악한 과정은 두 가지 설이 있다.첫째는 본래 양주자사였던 진온을 죽이고 수춘을 차지했다는 설.둘째는 진온은 이미 작년(192년)에 죽었고, 원술이 진우라는 사람에게 양주자사를 맡겼는데, 막상 원술이 쫓겨오자 진우가 원술의 수춘 진입을 막았고, 원술이 이를 물리치고 수춘에 들어갔다는 설이다.진우는 하비로 도망쳤는데, 그가 진규의 사촌동생이고 진등의 오촌 당숙임을 생각하면 이쪽이 더 신빙성이 있는 듯하다.어쨌든 193년 3월에 원술은 수춘에 입성하여 구강군을 장악했다.조조가 복수전을 빙자한 학살을 저지르고, 유비가 남하하여 서주를 차지하는 193년~194년의 기간 동안 의외.. 2024. 7. 6. 조조-원술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본 유비-원술 전쟁 (4) 4장. 조조-원술 전쟁 원술이 여포에게 감사했던 세 가지 중, '유비를 격파한 것'에 대해서는 앞선 글에서 다루었다.나는 이 세 가지 내용을 담은 서신과 더불어, 195년~196년의 상황을 근거로 당시의 일들이 여포를 배후에서 조종한 원술의 주도로 발생했다고 본다.나아가 196년 유비와 원술의 전쟁은 193년~195년 조조-원술 전쟁의 여파가 서주까지 닿은 것이라 본다.앞서 여포와 원술의 긴밀한 연결, 이후 조조와 유비의 은밀한 제휴를 살펴보았으니, 이제 그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이제 나머지 두 가지를 살펴보자.원술이 여포에게 감사한 것, 그 중 첫 번째인 '원씨 일가의 원수를 갚아준 것'은 사실 원술이 먼저 언급한 게 아니라, 여포가 먼저 말했다.동탁 주살(4월 23일)로부터.. 2024. 7. 5. 조조-원술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본 유비-원술 전쟁 (3) 3장. 유비의 패배 직후 정황 유비의 본거지 하비에서 일어난 단양병 반란. 그 배후에 원술이 있다고 추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원술은 조조가 서주에 정신이 팔린 동안 의욕적으로 강동 일대의 평정에 힘을 쏟고 있었는데, 서주 호족과의 제휴는 끊어지고 유비를 윗선에 세우기도 싫었던 단양병들 입장에서 '강동의 주인이 될지도 모르는' 원술은 매력적인 새 주군이었다.둘째, 단양병 반란은 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포의 신속한 개입과 함께 이루어졌다. 마치 그런 변란이 일어날 것을 예측했다는 듯이. 그렇다면 이 여포의 배후에는 누가 있었을까? 누가 여포에게 난의 정보를 제공했을까?셋째, 여포가 서주를 차지한 후 원술은 이에 감사하는 서신과 함께 쌀 20만 곡을 보내며 호의를 표했다. 그런데 단순.. 2024. 7. 5. 조조-원술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본 유비-원술 전쟁 (2) 2장. 서주의 통치 구조-서주 호족과 단양병의 대립 난세가 시작된 이후, 한나라 사람들은 마을에 보루를 쌓고 스스로를 방어했다. 각 마을의 군사요새화는 꽤 효과적이어서, 흉노족이 각 지역을 약탈하려고 해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이런 식으로 각 지역이 하나의 군사집단으로 뭉치는 중심에는 그 지역의 호족들이 있었다.호족들은 백성들과 하나로 뭉쳐 지역을 방어하기도 하고, 그 백성들을 자기 땅을 경작하는 소작인으로 삼기도 했다. 외부의 침략에 대항해 방어전을 치르면서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호족의 사병화 되어 갔다.호족이 백성을 착취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호족 밑으로 들어간 백성은 일단 관청의 인구통계에서 사라졌다. 즉 나라의 무거운 세금이나 물자 징발, 군역 등에서 해방될.. 2024. 7. 4. 조조-원술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본 유비-원술 전쟁 (1) 프롤로그 196년 여름 무렵, 이제 막 유비에게서 하비를 빼앗고 서주자사를 자칭한 여포에게 원술의 의미심장한 서신 한 통이 온다."내가 그대에게 감사할 것이 세 가지 있소. 첫째, 원씨 일가의 원수를 갚아준 것둘째, 조조의 연주를 공격하여 내 체면을 세워준 것,셋째, 유비를 격파해 준 것.감사의 뜻으로 쌀 20만 곡을 보내며, 병기가 부족하다면 크건 작건 말만 하면 얼마든지 보내주겠소."원술이 여포에게 감사를 전한 세 가지 중 첫 번째는, 동탁 대 반동탁연합의 전쟁 당시 동탁이 낙양에 있던 원씨 일가를 몰살한 일을 말한 것이다.여포가 동탁을 죽여 주었으니 원소, 원술 형제의 원수를 갚은 은인이다라는 뜻으로, 여포 자신도 장안을 탈출하며 같은 말을 했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술과 여.. 2024. 6. 21. 이전 1 2 3 4 5 6 7 다음 728x90 반응형